한양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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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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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정공법, 이경근 외과 교수

꼭 온종일 얼굴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니더라도 늘 그 자리에 서서 불을 밝혀주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환자의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사그라지던 꿈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경근 교수의 ‘미친 존재감’이 탄생한 이유다. 지리산자락을 앞마당 삼아 장대한 꿈을 키웠던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이경근 교수에게선 ‘진심’의 향기가 짙다. 무뚝뚝하지만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대하는 그의 이면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사는 인간 이경근이 있다. 그의 말대로 의사도 사람이다. 이경근 교수

image경남 하동에서 나고 자란 이경근 교수는 지리산자락을 앞마당 삼아 뛰어놀았다. 백두대간 끝자락에서 훨훨일어난 거대한 산괴, 지리산은 아무 수식이 필요 없는 산이다. 고향 마을 어르신들은 “지리산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농을 건네곤 하셨지만, 소년 이경근의 마음은 이미 산자락 꼭대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허구한 날 그 장대한 산줄기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는데, 시시한 일을 하고 살 순 없잖겠어요?(웃음)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매사에 온 정성을 다하라고 부모님이 늘 말씀하셨어요. 특히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르신들에게 잘해 드리라고요. 제 환자의 대부분이 6~70대 노인이에요. 부모님 말씀을 늘 상기할 수 밖에 없지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인 이경근 교수는 살갑진 않아도 그만의 표현 방식으로 환자에게 진심을 전한다. ‘차도남’의 전형인 듯 보이는 의사 이경근의 이면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사는 인간 이경근이 있다.

그의 ‘미친 존재감’에는 이유가 있다

image학창 시절 별명은 ‘촐랑이’였다. “까불기도 많이 까불었지만, 덜렁대는 성격도 한몫했지요. 그랬던 제가 수술실에서 180도 달라진 행태를 보이는 걸 보면 신기하긴 해요.” 한 달에 3~40건의 수술을 집도한다. 열다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술한 적도 있다.

“수술 경과가 좋았는데 합병증으로 문제가 생기면, 티는 안 내지만 의욕도 많이 떨어지고 수술하기가 싫어질 때도 잦아요. 센 척하지만, 의사도 사람이니까요(웃음).” 알고 보면 약한 남자라는 너스레에 미소가 고인다.

“사이좋던 70대 노부부도 기억에 남아요. 담도암으로 췌십이지장 절제술을 받았던 할아버지를 곁에서 간호하던 할머니가 1년 뒤 똑같은 병명을 진단받고 같은 수술을 받았지요. 흔한 질병도 아니고 흔한 수술도 아닌데, 한 부부에게 나란히 같은 병이 생긴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두 분 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셨어요. 퇴원이후에도 가끔 병원에서 그분들의 아드님을 마주칠 때마다 ‘그 특별한 운명을 집도한 특별한 인연’으로 여기는 게 느껴져 한동안 그 뜨거운 눈빛이 은근히 부담스럽더라고요(웃음).”

췌십이지장 절제술은 췌장암이나 담도암, 십이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췌장 일부와 담낭, 담도, 십이지장 등 복부 장기를 한꺼번에 절제해야 하는 고난도 수술로, 합병증 발생률과 사망률이 높아 일반적인 개복 수술에서도 일부 전문의에게만 한해 시행되고 있는 수술이다. 간·담도·췌장외과 복강경 수술의 권위자인 이경근 교수는 개복수술이 아닌 복강경을 이용해 오랫동안 고통 받아왔던 환자들을 소생시키며 한 수 위 의술을 인정받고 있다.

“내시경 수술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게 사실입니다. 수술 방법, 수술자의 숙련도에 따라 내시경 수술 성과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학제간 진료와 함께 꾸준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전 의료진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까닭입니다.”

저, ‘쉬운 남자’예요~

21세기가 되면 하늘을 날아서 출근하리라고 확신했다. 쏟아지는 신기술들이 생로병사의 비밀까지 뒤흔들 것이라는 예측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상당 부분이 바뀌었지만, 고전적인 정공법 또한 여전히 맞다. 미미한 트렌드들이 수없이 왔다가 사라지지만 몇 세기가 지나도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진심’이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병원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술·담배 먼저 끊지 않으면 진료해 주지 않겠다고 야단치는 호랑이 선생님 덕에 담배 끊은 사람도 꽤 있다.

의사 선생님이 고쳐준 덕에 몇십 년 만에 밤잠 푹 자 봤다는 할아버지를 비롯해 도대체 내 몸을 어떻게 한 건지 신통방통하게 고질병이 싹 나았다는 할머니까지, 그가 평범한 일상을 반납한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가능한 한 더 많은 이들과 행복을 나누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노라고 했다. 기왕 의사 직업을 갖고 사는 몸, 큰 심호흡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의 질병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일은 그리 거창하지도 그리 어렵지도 않은 미션이란다. 의사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려고 애쓰는 그의 사명은 일분일초가 모자랄 만큼 숨 가쁘게 돌아가는 병원 안팎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요즘은 바쁜 일과 틈틈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임상데이터를 통해 수술 테크닉을 비롯해 수술 후 합병증 감소 방안 등에 도움을 줄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후학 양성에도 힘을 싣는다. 치료법 개발의 초석을 마련하고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기초연구의 산실로 한양대학교병원이 우뚝 서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모교를 지키는 교수로서 자신이 해야 할 당연한 임무라고 했다.

긴 숨으로 묵묵히 걷는 길

소문난 산(山)사람인 이경근 교수의 여행담을 듣다 보면 시간 가는줄 모른다. 여행을 길게 떠날 시간이 없는 터라 짬이 날 때마다 가까운 산에 오른다.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산도 ‘이경근’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특별하기만 하다. “학교 다닐 때 산악부에서 활동했어요. 암벽등반, 빙벽등반 재미에 아주 미쳤었지요(웃음).”

대자연의 침묵이 깃든 설봉을 오르며 일상의 묵은 각질과 오만의 때가 씻겨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니까 산은 이 교수에게 피로회복제이자 자양강장제인 셈이다. 긴 레이스를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끈기 있게 뛰어왔다. 조급하게 달려들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심을 전하며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 이경근 교수의 힘이다. 속도를 조금 늦춰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소박하지만 꿈은 더 많이 생겼다. 좋은 이웃이 되는 꿈, 따뜻한 선배가 되는 꿈, 더 겸손한 자세로 원칙을 지키며 사는 꿈…. 바람을 밀며 걷던 길을 다시 등에 지고 되돌아오면 어김없이 밤이 돌아오는 법. 앞만 보고 달려올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꿈들을 소중하게 보듬으며, 앞으로 그가 더욱 깊어질 모양이다.

글. 윤진아 , 사진. 권용상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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