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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종합예술인, 나혜석을 삼킨 파킨슨병

화가, 작가, 시인, 조각가, 페미니스트, 독립운동가, 언론인 등 나혜석이라는 인물을 수식하는 말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녀는 시대변혁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남기며 모든 활동이 ‘최초’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정도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말년에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갔던 그녀의 신념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나혜석 작품 - 자화상(미상), 저것이 무엇인고(1920)

언제나 최초로 불리는 여인

천재 화가 나혜석은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1918년 귀국하여 화가,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를 비롯, 1919년 3·1 만세 운동에도 참여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하여 주시오’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김우영과 결혼하였고 결혼식 청첩을 신문에 광고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선 최초로 유럽여행을 한 여인으로 기록되었으며 한국 유화를 정착시킨 최초의 전업 화가였다. 이 외에도 신사참배 거부, 일본식 성명 강요 거부, 시대의 냉대와 조소에 굴하지 않고, 예술가의 길과 독립된 여성으로서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나간다. 이렇게 그녀의 모든 행보 앞에 ‘최초’라는 타이틀이 반짝반짝 영원히 빛날 것만 같았다.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에 이어 연인과 이별하면서도 꺾이지 않던 당당함이 51세에 찾아온 파킨슨병으로 조금씩 빛이 바래간다. 파킨슨병의 증상인 수전증에도 그림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그녀. 이후로 병이 악화되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오빠 나경석이 그녀를 인왕산 근처 청운 양로원으로 보낸다. 자녀들을 보지 못하는 고통으로 심신의 병이 깊어졌고, 요양원을 탈출하고 들어가길 반복하다 결국 1948년 12월 10일 무연고자 신원으로 확인되면서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나혜석 작품, 수원 서호(미상) 나혜석 작품, 스페인 해수욕장(1928)

떨림으로 시작하는 질환

나혜석파킨슨병 환자 수를 살펴보면 미국 약 100만 명, 영국 13만 명, 한국은 10만 명 정도이며,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 정도가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생 연령은 대부분은 55세 이후이며 남녀 비율은 3:2로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

나혜석이 앓았던 파킨슨병은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특별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병리학적으로는 뇌 신경물질인 도파민을 만드는 중뇌 흑질이 파괴되면서 파킨슨 증상이 초래된다. 파킨슨병에서 부족한 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역할을 살펴보면 운동조절에 관여하고, 시상 하부와 작용하여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며 뇌의 변연계에 영향을 주어 분노, 공포, 정서 및 기억장애에 관여한다. 대뇌피질에 영향을 주는 경우 환각 망상 등의 증상이 초래되기도 한다. 일부 가족성으로 발병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뚜렷한 발병 원인을 모르는 특발성 파킨슨병이다. 원인을 알 수 있는 약물, 독성물질, 수두증, 뇌혈관질환 등인 경우에 이차성 파킨슨병이라 부른다.

파킨슨병의 진단은 전적으로 신경학 전문의사의 진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뇌자기공명사진(MRI)을 찍으면 이상소견이 나와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파킨슨병은 뇌사진상 특이소견이 없으며 MRI 촬영은 이차성 파킨슨병과 파킨슨병 뇌손상 외에 다른 뇌 부위가 손상되는 파킨슨 플러스병의 감별을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 일부 뇌 도파민 수용체에 대한 페트(PET)검사 혹은 심장검사를 통한 교감신경 침범 여부가 추가적으로 진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료가 잘되기 위해서는 발병 초기에 진단을 정확히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약물치료가 우선이며 약물치료에 증상이 잘 조절되나 치료 시작 4~5년 후 약물에 의한 증상 조절이 어려워지거나 삶의 질과 행동에 많은 불편이 초래되면 뇌부위에 수술을 통한 뇌심부자극수술을 시행하여 환자 증상을 호전시키고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혜석의 말년에 드리웠던 그늘인 파킨슨병. 현대에도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체계적인 치료를 통해 그녀만의 도전적인 작품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시대를 앞선 비운의 예술인인 그녀의 작품을 다시금 한번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 김희태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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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 김희태
태그

#파킨슨병 , #기억장애 , #수전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