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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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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특별기획] 가지 않은 길,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작성일
2022-09-20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고단하다. 숱한 장애물을 헤치고 ‘류마티스’라는 새로운 분야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김성윤 前 교수를 만났다.

한양대학교병원 개원 50주년 특별기획
한양대학교병원을 빛낸 사람들 ④
김성윤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초대 병원장

 

1975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80 한양대학교병원 내과 전문의
1983 미국 Chicago, Rush Medical School Post-graduate Trainee in Immunology
1983 ~ 1985 미국 New York, Mount Sinai 의대 Hospital for Joint Disease – Orthopaedic Institute Rheumatology fellow
1985 ~ 1986 미국 Univ. of Tennessee Research
1980 ~ 2001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교수
1993 ~ 1996 한양대학교병원 중앙연구실장
1993 ~ 2001 한양대학교 류마티즘연구소장
1997 ~ 2001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초대 병원장
2001 ~ 현재 김성윤내과 ‘류마티스클리닉’ 원장

 

시를 사랑하던 문학도, 의사가 되다

학창시절부터 의사를 목표로 하는 보통의 의사와는 달리,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시와 소설을 사랑하던 문학도였다. 문학에 빠져 공부와 등을 진 그는 결국 대학 진학에 실패하게 된다. 남북한의 대치로 혼란했던 그의 재수 시절, 상황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당시 신설 의대였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의사가 운명이었던지 학부와 수련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진료과 선택’이라는 과제를 목전에 맞이하게 된다. 내과를 선택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그의 선천적인 기질은 그를 한자리에 가만히 두지 않았다.

 

류마티스’라는 新학문 배움을 찾아 떠나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고 싶었다. 한양대학교병원 내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그는 고민했다. ‘류마티스’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내과학 서적에 작게 주석으로 달려 있는 류마티스관절염에 대한 설명 두어줄을 발견하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했다. 학장을 찾아가 연수를 보내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1983년, 미국행 비행기에 탄 청년의사의 가슴은 새로운 학문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갔어요. 가서 배우는 모든 게 새로웠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아기가 세상을 알아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어느 하나 기억에 남지 않 는 일이 없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2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더라고요. 학교에서는 계속해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고 심지어는 저를 잡아가려고 미국으로 사람이 오기까지 했었어요(웃음). 하지만 배워야 할 것을 충분히 배우지 못 하고 돌아간다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생각에 무조건 버텼죠. 그렇게 4년의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어요."

국내 최초의 류마티스내과 전국의 환자를 불러 모으다

한양대학교병원에 돌아온 그는 류마티스내과의 분과에 힘을 기울였다. 류마티스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의료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류마티스에 특화된 진료의 필요성을 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료진들조차 환자가 드문 질환에 굳이 과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류마티스질환에 대해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마음먹는다. 방송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단순 소염제 처방으로 변변치 못한 치료를 받고 있던 전국의 류마티스 환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1993년 당시 그를 기다리는 대기환자는 모두 6천 7백여 명, 최소 몇 개월은 기다려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관절이 아파서 오는 환자들은 무조건 뼈와 관절의 문제라고 판단해서 정형외과로 보냈어요. 류마티스 질환은 관절에서 증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인체의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끼치는 질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방송으로 인해 많은 분이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다행히도 환자가 많이 왔고 저희 진료과도 활황을 이루었습니다.”

 

한양대학교병원의 자랑, 류마티스병원을 세우다

그는 류마티스내과의 성공을 바탕으로 더 큰 꿈을 그린다. 류마티스 환자를 한 곳에서 체계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류 마티스병원을 세우는 것이었다. 병원 설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1998년 결실을 맺는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류마티스 병원이 설립된 것.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해 일등을 거머쥐겠다는 그의 초심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류마티스병원의 개원은 지난 의사 생활의 모든 노력이 보상 받는 것처럼 뿌듯했습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요. 똑똑한 후배들과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이사장님께 류마티스병원을 강남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위치적인 조건도 병원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거든요.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이사장님께서는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병원을 옮길 땅까지 직접 보러 다녔으나, 주변의 거센 반대로 결국 무산된 것이 아직까지도 아쉽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다

초대 병원장으로 류마티스병원의 체계를 만들었던 그의 앞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종신 병원장까지도 가능한 상황에서 그는 홀연 대학을 나와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했지만 그간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병원에 대한 서운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최정점에서 갑자기 모든 걸 포기한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병원 안에서 다른 진료과와 힘겨루기 하는 일상을 그만하고 싶었어요. 의사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인데 정작 출근하면 다른 것들이 더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진료와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었 죠. 그 길로 김성윤내과의원을 개원했고, 오늘까지 환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한양인 다시, 돌아오다

'다시는 한양대학교병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였지만, 서운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세계적인 수준으 로 류마티스병원을 성장시켜나가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2019년에는 모교의 발전을 위해 발전기금 3억원을 쾌척, ‘김성윤 LAB’이 탄생했다. ‘미우나 고우나’ 모교의 발전을 생각하는 그는 어쩔 수 없는 한양인이다.

“몇 년 전, 의과대학 50주년에 나를 명예의 전당에 올리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비록 당시에는 좋지 않은 감정으로 병원을 나왔지만, 후배들은 나를 따뜻하게 기억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했습니다. 지금 류마티스병원에 있는 후배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모두 국제적인 연구자로 성장했죠. 다만 시설 측면의 지원이 모자란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앞으로 병원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더욱 발전하는 류마티스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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