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가기 주메뉴로 가기 카피라이트로 가기

한양 사람들

HanYang university seoul hospital

{menu_nm=null} 조회 : 제목, 등록일, 조회수, 내용, 첨부파일

[50주년 특별기획] 장기이식, 생명을 살리기 위한 도전과 기록

작성일
2022-03-14

뇌사가 뭔지, 장기기증이 뭔지 의사들도 캄캄하던 시절, 장기이식 말고는 희망이 없는 환자들을 위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수술대 앞에 섰던 의사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장기이식 1세대, 곽진영 명예교수를 만났다.

 

한양대학교병원 개원 50주년 특별기획
한양대학교병원을 빛낸 사람들 ①
곽진영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1972 ~ 2004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79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연수

1995 ~ 1998

대한이식학회 이사장

2001 ~ 2002

대한이식학회 회장

1998 ~ 2000

대한혈관외과학회 회장

1997 ~ 2001

제11대 한양대학교병원 원장

2004 ~ 현재

한양대학교병원 명예교수

 

제2의 삶, 희망을 위한 기술을 익히다

더 이상 치료로 효과를 얻을 수 없는 말기 질환자들은 뇌사자 또는 생체에서 기증된 장기를 이식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장기이식은 환자에게 ‘제2의 삶’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한 줄기 빛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장기이식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곽진영 명예교수는 열악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지금 같은 의료 장비도, 체계도 마련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었죠. 그 때 한양대학교병원이 전국의 의료진을 모으고,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면서 개원한 거예요. 국내 최초로 신장 투석기와 CT기계를 들여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의 환자들이 우리 병원으로 모여들었죠. 시설적인 체계는 어느정도 갖춰졌으니 해외 술기를 보고 배워와 의료 수준을 끌어 올려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

당시 신부전증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곽진영 명예교수는 많은 이들에게 새 삶을 줄 수 있는 신장이식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최신 지견을 보고 배운 그는 부푼 가슴을 안고 한양대학교병원으로 돌아왔다.

사진. 곽진영 명예교수가 신장이식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

 

새로운 과제, 뇌사에 대한 공론의 장을 열다

그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79년은 한양대학교병원의 인공신장센터가 전국에 널리 알려지며 신장이식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기 시작하던 때다. 그를 포함해 외과, 신장내과, 비뇨기과, 신경외과의 의료진으로 구성된 장기이식 팀이 만들어졌다. 1979년 1월 13일, 입원 환자와 뇌사 기증자가 연결되면서 국내 최초 뇌사자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되었다. 이후 곽진영 명예교수를 포함한 이식팀은 6월, 9월에 걸쳐 총 4건의 뇌사자 신장이식을 진행했다. 수술은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뇌사자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뇌사’라는 개념이 정립돼있지 않았던 시절, 심장이 멈춰야만 사망으로 판단했던 사회에 뇌사자 장기이식은 법률상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게 된 것이다.

사진. 1979년 한양대학교병원의 뇌사자 신장이식 성공은 의료계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드라마, 뉴스, 방송, 학술대회에서 장기기증을 알리다

의학적으로나 죽어가는 말기 질환자들을 위해서나 뇌사자에 대한 개념 정립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오랜 시간 ‘심장사’만을 죽음으로 받아들여 왔던 대중들에게 뇌사의 개념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 언론과 미디어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방영된 ‘소망’이라는 프로그램 은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메디컬 드라마로 장기이식을 포함한 다양한 환자 및 진료 케이스를 스토리에 녹여냈다. 뿐만 아니라, 1982년 해외에서 권투시합 중 뇌사 상태에 빠진 우리나라 선수가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사건이 발생, 장기이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뉴스는 물론, MBC<건강하게 삽시다>, KBS<아침마당>, SBS<모닝와이드>, YTN<건강24>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장기이식에 대한 정보가 널리 퍼졌다. 곽진영 명예교수는 장기이식에 관한 내용이라면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자문, 출연하면서 뇌사자 장기 이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생명을 살리는 기적 릴레이 운동을 펼치다

1980년대는 가족 간 신장 이식의 붐이 시작되었던 때다. 그런데 장기매매가 성행하고 면역검사결과 불일치를 핑계로 신장매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가족 간 이식이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기증자는 사라졌고 환자들은 하루하루 죽어갔다. 더불어 장기가 거래되고 이러한 움직임이 음성화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곽진영 명예교수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던 중, 면역 부적합으로 가족 간 이식이 불가능한 사람들 간에 서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떠올린다. 이 방법은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와 함께 ‘신장 Exchange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신장 Exchange program’을 통해 이루어진 신장교환은 자그마치 98례에 달했다. 해당 사례 는 ‘몬트리올 세계이식학회’에 발표, 국제적으로 공여자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큰 환영을 받게 된다.

법 제정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다

1993년 대한의사협회가 뇌사판정 기준을 마련해 법 제정의 기반을 닦았고, 1995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이식학회 개회식에서 ‘뇌사에 관한 선언문’을 선포하면서 법 제정의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이후 지난한 연구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 2000년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첫 신장 이식수술이 이뤄진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었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곽진영 명예교수의 굳은 신념이 이루어낸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명을 나누고 가는 것은 최고로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기증자들을 생명의 영웅으로 존중할 때 국민 모두에게 장기기증의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미개척 분야였던 신장이식학을 들여와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법과 사회적 인식까지 바꾸며 우리나라 장기이식 분야의 역사를 써내려온 곽진영 명예교수. 앞으로도 장기기증 문화가 활발해져 더욱 많은 말기 질환자들이 새 삶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