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만으로도 사춘기 소녀가 된 양 가슴 설레는 대상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할까.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정형외과 김두숙(57) 간호과장에게는 ‘산’이 바로 그런 존재다. 산의 맛을 알게 되면서 생의 또 다른 가치를 깨닫게 된 까닭이라는데……. 산이 곧 그녀이고, 그녀가 곧 산일 수밖에 없는 이치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산

수려한 풍광만큼이나 산세가 도도하기로 유명한 도봉산.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등산객들 틈으로 김두숙 간호과장이 범상치 않은 에너지를 풍기며 등장한다. 올 4월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인터넷 서클 <3050그린산악회>의 암벽등반이 이뤄지는 날이기 때문. 도봉산에서도 가장 험하다는 ‘경송B’ 길을 거쳐 선인봉(仙人峰)에 오를 예정이다. “암벽등반의 명소로 인기가 많죠. 처음이냐고요? 아니에요. 하지만 들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답니다. 제가 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죠.” 김두숙 간호과장이 본격적으로 산을 접하게 된 것은 1999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다음이었다. 약 1년 동안의 집중 항암치료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된 그녀를 독려해 무작정 불암산에 오른 남편의 고집이 결정적 계기였다. 그렇지만 당시 김두숙 간호과장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심신이 쇠약해진 암 환자에게 강요하다시피 ‘산에 가자’ 제안하고 촉구하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죠? 마냥 힘들고 짜증스럽기만 한 그날의 산행이 한숨 자고 나니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거예요. 뭐랄까……, 너무 그립더라고요.” 결국 김두숙 간호과장은 남편이 소속된 산악동호회에 가입, 국내 유명산들을 돌며 워킹-릿지-암벽 등 유형별 등반 기술을 익혔다. 특히 암벽등반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주었다. 종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희열’ 그 자체였다. 이후 김두숙 간호과장은 투병 중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암벽등반에 매진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닿지 못하는 지점에 발을 딛을 때의 쾌감은 지상의 그 무엇보다 중독성이 강했다. 어느덧 8년째, 그간 김두숙 간호과장을 괴롭혀 온 암세포들마저 이제는 말끔히 자취를 감췄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산은 나의 스승이자 동반자
암을 극복하는 과정과 암벽등반은 공통점이 아주 많습니다. 둘 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거든요. 지게 되면 처참해지는 것 역시 둘 다 똑같죠. 따라서 암벽등반을 통해 꾸준히 쌓아온 정신력이 암을 치유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 듯합니다. 산이 제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지요.

암벽등반은 김두숙 간호과장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매사 자신감을 갖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 하면, 생소한 업무에도 과감히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1년에 한 번씩은 꼭 해외에서 암벽등반을 할 계획입니다. 작년에는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높다는 말레이시아의 키나바루 산에 다녀왔는데, 암벽등반을 시도한 20명 중 7명만이 성공했고 그 가운데 유일한 여자가 저였답니다. 올 8월에는 일본의 후지산과 북알프스를 정복하기도 했죠. 내년에는 네팔로 트레킹을 갈까, 생각 중입니다.” 체중의 절반가량이나 되는 장비를 지고 산등성에 몸을 싣는 김두숙 간호과장의 발놀림이 놀라우리만치 가뿐하다. 가파른 경사를 만나도 호흡 한 번 흔들리지 않는다.
“원칙에 충실할 뿐이죠. 늘 겸허한 자세로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중요해요. 자만하다가는 자칫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거든요. 암벽등반을 하기 전이면 저 또한 언제나 기도로 마음을 가다듬는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산과 더불어 숨 쉬기를 희망한다는 김두숙 간호과장. 산행 4시간 만에 깎아지른 듯한 선인봉(仙人峰) 암벽 위에 선다. 그리곤 로프와 하나가 돼 리드미컬하게 점프를 시도한다. 청대같이 말간 천공을 벗 삼은 그녀, 드디어 새처럼 날아오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갯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