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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커다란 나무, 방사선종양학과에서 근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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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고향인 강동구 둔촌동은 그 당시에는 평범한 농촌마을 이었습니다. 천호동 약수터라고 불리는 유명한 약수가 나오는 곳이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단골로 김밥에 사이다를 넣은 가방을 메고 소풍을 가던 아련한 추억이 배어 있는 곳입니다. 고교야구로 이름을 날리던 동대문상고에 진학하여 화이트칼라의 로망이었던 은행원이나 대기업에 입사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 내 소모임 MRA라는 봉사단체에 가입하여 양로원과 어린이시설 방문 등의 활동을 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활동이 또 다른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무척이나 저를 아껴주시던 할머니께서 췌장암으로 투병하시던 중, 방사선치료를 받게 되면서 처음으로 치료방사선과를 접하게 되었고, 방사선으로 영상만 찍는 것이 아닌, 직접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신기함에, 고교 졸업 후 방사선사의 꿈을 키우며 방사선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실습과정으로 한양대학교병원에 발을 딛게 된 인연으로 방사선종양학과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근무해 오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방사선 종양학과는 주로 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으로 환자분들의 심신이 매우 지쳐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수술과 항암치료 후에 방사선치료를 받기 위해 방사선종양학과를 접하게 됩니다. 항상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할머니 생각을 하면서, 환자분들의 아프신 몸과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저의 투박한 손이지만 격려의 마음으로 지친 손 한 번 더 잡아드리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전해 드리겠다는 자세로 치료에 임하고 있습니다. 때론 제가 맡은 일에 한계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저도 결혼하여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제 아이들 또래의 어린 환아를 치료하거나, 임산부의 몸으로 태아를 위해 모든 치료를 거부하시다 출산 후에 치료받기 위해 오신 환자분을 볼 때면 애잔한 모성애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img class="right"투병으로 반복되는 항암치료와 전이, 재발의 고통에 지쳐서 괴로워하는 환자분을 치료할 때면 저의 마음도 무겁고, 무엇을 도와드려야 할지 막막할 때,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방사선치료 기술도 많이 발전하여 예전보다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방사선종양학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정상 세포조직에는 최소한의 방사선을 주고 종양세포에는 가능한 많은 양의 방사선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치료방법을 도입하여 완치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방사선종양학과는 동료들과 함께 환자분들을 편안하게 치료해 드리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방사선사의 길을 선택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암환자의 치료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자 하며, 언제나 밝고 친절한 모습으로 환자분들을 맞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윤중천 한양대학교병원 방사선종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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