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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을 잘 보는 의사, 그게 좋은 의사죠 - 박병배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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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는 남다른 인류애를 실천한 의사였고 노먼 베쑨은 의사이자 프론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개척가였다. 한양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의 박병배 교수는 환자들이 가족 만큼이나 친근하게 여기는 의사다. 슈바이처도 베쑨도 모두 훌륭한 의사지만, 박 교수가 되고 싶은 의사란 미사여구 다빼고 그저 환자들을 잘 보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나는 의사다. 세심한 성격에 안성맞춤인 전공“뭐니 뭐니 해도 환자를 잘보는게 최고의 의사겠죠?” 그의 가슴 속에는 의사에 붙는 온갖 미사여구는 차지하더라도, 환자와 친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자리하고 있다. 화학 공학도를 꿈꾸었던 그는 입시 공부를 하던 시절 알게된 한 친구의 영향으로 의학도가 되었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나란히 의사가 되고 싶은 꿈, 그리고 선의의 경쟁이 유도한 방향 선회였다. ‘혈액종양내과’라는 다소 이색적인 전공은 숙명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말마따나 그가 전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공이 세심한 성격의 그를 선택한 것. “이 일을 하면서 느낀점이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 이었어요. 책으로 공부하던 것보다 실제 환자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웠거든요. 아는 것과 해보는 것은 역시 다르더군요.” 그가 현장에서 만난 실제는 이론과 많이 달랐다.그의 주 종목이랄 수 있는 혈액암이 희귀암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었지만, 우연히 겪게 된 그 희귀암이 환자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는 현장에서 직접 목도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건 평면적 지식과 입체적 체험으로 대비할 수 있을만큼 간극이 큰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그는 어떤 의사가 되겠다는 크나큰 포부보다는 이런 의사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지만 소중한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진심어린 소통만큼 감동적인 치료는 없어요“의사니까 병 치료만 하는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환자들과 진심어린 소통을 하는 게 치료만큼이나 중요하더라고요.”
최고보다는 최선을 지향하는 의사이고파“림프종은 최근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분야에요. 완치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완치가 잘 되다 보니 그만큼 더 의욕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일 년에 4천 명 정도가 림프종으로 병원을 찾으니 백혈병보다 발병 빈도가 높다고 봐야 되겠죠. 그중 20퍼센트는 흔치 않은 희귀 림프종 환자들이에요. 일반 림프종과는 다르게 치료를 해야 하지요.” 현 의료보험 체계가 다른 환자들보다는 암 환자를 많이 배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현실적 고민도 곁들인다. “우리나라에서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의 가장이 암 환자로 드러누우면 가정이 붕괴되는 상황이잖아요. 정부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줬으면 좋겠고요. 또 선진국처럼 전문가로 구성된 암 전담 팀이 암 환자들을 전방위로 케어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지금은 요원해 보이는 개인형 맞춤치료가 가능 할 겁니다. 그게 언제든, 꼭 정착되어야 할 시스템이 기도 해요.” 의사와 간호사, 여기에 영양사, 약사, 사회사업가, 심리치료사 등 전문가 집단이 유기적인 하나의 팀을 이루어 암 환자들을 물리, 심리적으로 돌보는 ‘팀 어프로치’가 국내에 하루빨리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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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종, 고형암, 혈액질환, 그리고 골수이식까지, 희귀병이나 희귀암 범주로 다루어지는 분야가 그의 전문이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남들보다 꼼꼼하고 세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암이 말기에 이르러서야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온 보호자들을 기억했다. 모처럼 명절에 찾은 아버지가 유난히 쇠약해 보여 검진을 받게 한 결과 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선고가 떨어진 경우였다. 죄책감을 느낀 아들은 ‘이미 늦었다’는 박 교수의 고언에 아버지를 고쳐내라며 가슴을 후려쳤다. 한계가 보이는 환자들에게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없음이 그는 마음 아팠다. 인터넷의 발달로 의료정보가 워낙 개방되어 있는 탓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환자나 가족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시간 싸움이자 자기와의 싸움인 병상이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그는 잘안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에게 친구 같은 의사가 되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영원한 난제’인 사람을 더 잘이해하고 싶어, 한 때는 심리학 관련 서적이나 자료들을 뒤적여 보기도 했다. 착한 의사와 좋은 의사 사이에서 기회비용을 지불한 끝에,그는 환자와 그들 가족에게도 정리 할 수있는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그때 의사로서 한계를 느껴요. 시간이 생기면 전공과목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래서 더 강해졌어요.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어쩌면 이 분들이 겪고있는 상황이 나 또한 실제로 겪을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제겐 거창한 미래를 계획하는 것 보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직업은 박 교수의 인생관까지 바꾸어 놓았다. 오지 않을 미래를 전제하는 대신 그는 ‘지금 잘 살자’는 철학을 갖고 있다. 주로 만나는 게 우리나라 성인 사망원인 1위라는 ‘암’ 환자이다 보니, 생이 얼마 남지 않아 생이 절실해진 환자들을 보면서 절실히 깨달은 진리다.
“매스컴에서는 암 치료 기술이 발전했다고 떠들어대지만 사실 50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나아진 것도 없어요. 예전에는 불치병으로 다스려졌지만 지금은 완치병이 된 종양이 일부 있다는 것 정도가 달라진 점이랄까요? 지금이 과도기예요. 앞으로 신약 개발이 활발해지면 지금보다는 완치 가능성이 더 커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더 많은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는 오늘도 항시 대기중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의 공포를 이해하기에 휴식조차 기꺼이 반납할 수 있는 것이다. “늘 스탠바이 상태죠. 언제 어디서 저를 필요로 할 지 모르니까.”
올해는 기다려왔던 골수이식센터의 리모델링이 완성되는 해다. 일이 더 바빠질 거라면서도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센터의 개장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당장 열심히 사는 것 외에 특별한 꿈이나 희망이 없다면서도 가슴 속에 언젠가 푸른 새싹을 틔울 수 많은 씨앗을 심어둔 그이다. 지금 하고있는 일을 더 잘 할 시간마저도 모자란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낳은 지극히 현실적인 장래 희망이 있다면 ‘환자를 열심히 보겠다’는 것. “앞으로 최고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지금 당장 열심히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