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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많은 남자 - 김태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작성일
2013-11-07

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천문회의 회원이었던 그는 한 달에 한 번 밤을 꼬박 지새우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땅거미가 내리고 어둠이 찾아오면 드디어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기실 별보다 더 반짝인 건 ‘소년 김태곤’의 눈이었는지 모른다. 

김태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김태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새 꿈, 새 삶 선물해드릴게요!

유년시절, 나이답지 않은 진득함과 집중력 덕분에 ‘강태공’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땐 그저 낚시꾼인 줄 알았지만 좀 더 성장한 다음에 사전을 찾아보니, 혼란스러운 세상에 곧고 지혜로운 처세로 미래를 준비한 인물이 바로 강태공이었다. 의사가 된 소년은 재활의학 분야에서 강태공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현대 의술에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뇌병변, 척추손상 환자의 경우 의료적 치료는 외상이나 질병에 대한 병소를 치유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아요. 환자가 장애를 입었을 때 남아있는 기능으로 일상생활은 물론이며 직장생활까지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치료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요. 저를 믿고 찾아온 환자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도와드리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김태곤 교수본과 3학년 때 AMSA(아시아의대생연합회) 회장으로도 활약한 김태곤 교수는 1996년 AMSA 학술대회를 한양대학교에서 개최하면서 대회 주제를 ‘재활의학’으로 정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걸고 논문과 대회를 준비하면서 “환자 입장에서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일이야말로 치료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라고 총장을 설득해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밤새워 의학의 미래를 논하고 더 나은 의술을 꿈꾸던 20대 의대생의 열정에 30대의 신념과 40대의 연륜이 보태져 세상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원칙이 생겼다. “유능한 의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환자의 몸 상태는 물론 마음까지 읽을 줄 아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어려운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환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고요. 그래서 아주 소소한 일부터 시작했지요. 보통 환자들이 병원에 올 때는 나쁜 소식을 들고 오잖아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저는 환자에게 좋은 소식 위주로 전해드리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치료하면 이런 점이 나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치료하면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더 강조하는 거죠.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까요.(웃음) 가령 루게릭병의 경우 환자들 스스로 ‘죽는 병’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데다 실제로 아직은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에요, 재활치료와 의료진의 역할이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환자들에게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치료는 더 이상 아무 진전도 의미도 없거든요.” 그는 의사다. 그리고 더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는 ‘강태공’이다. 환자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는 김태곤 교수는 게릭병·파킨슨병 치료와 연구는 물론 건강강좌에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매주 한양대학교병원이 위탁·운영하는 성수재활의원에 매주 나가 뇌병변이나 척추손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기고 있다. 기왕 의사 직업을 갖고 사는 몸, 큰 심호흡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일은 그리 거창하지도 그리 어렵지도 않은 미션이란다. 온 세포가 병원에 집중돼 있다 보니 아내에게는 ‘천하의 몹쓸 남편’으로 낙인 찍혔지만, 당장 죽을 것만 같던 환자들이 소생해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노라고 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와 웃음을 치료약 삼아 즐기는 동안, 김태곤 교수는 환자와 한 뼘 더 가까워졌다.

재활의 기본은 희망, “포기하지 마세요!”

천체물리학 빅뱅이론에 심취한 소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근본적인 관심은 ‘생명’이었던 듯하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명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관해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별자리 설명을 위해 만들어진 천체투영기의 인공 불빛만 봐도 가슴이 떨렸는데, 진짜 하늘 속 별빛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어요. 천문회 회원이 되고 나서 한 달에 한 번 천체 관측을 할 때마다 꼭 우주로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었죠.” 늦은 밤 연구하다 갑갑할 때면 병원 옥상에 올라가 별을 관측하는 게 유일한 취미생활이다.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그의 별보기는 더욱 빛이 난다.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여주고 싶어 김태곤 교수는 종종 ‘별 보기’ 놀이를 권하고 있다. 병마에 주눅 들었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약해진 어른들이 환한 웃음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나니, 바쁜 일정 틈틈이 짬을 내어 취미활동을 공유하게 됐단다.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과 별을 볼 때마다 우주 속 귀한 인연임을 실감한다. 진심을 알아주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청신호다. 환자와 상담하고 치료하고 연구하고 강연하는 매 순간 밤하늘이 알려준 인생의 순리를 되새기며 김태곤 교수는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병원 안팎에서 빛나는 ‘인생 여행안내서’를 들고, 이 천진난만한 남자는 환자와 진득한 반성장에 나선 참이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김태곤 교수 진료실

“재활의 기본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일반재활, 호흡재활, 난치병 재활 등 모든 질환이나 부상에서 재활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강한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5년 전 스물다섯 창창한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척추손상 환자가 저를 찾아왔어요. 택배 일을 하며 열심히 살던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땐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던 상태였어요. 우울증도 심했고요.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용기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희망을 주는 일부터 시작했지요. 손 일부의 힘이 남아있으니 휠체어를 타는 일부터 해보자고 설득한 끝에, 온종일 누워만 지내던 친구가 지금은 장애인스포츠까지 도전하고 있어요. 결혼할 여자친구도 생겼다더군요. 본인 말로는 사고 전보다 훨씬 더 밝은 사람이 된 것 같대요. 죽음만 생각하던 청년이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됐으니, 의사에게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겁니다.” 먼 훗날 자신의 환자들에게 ‘살 맛 나게 만들어준 의사’였다고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김태곤 교수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본다면, 전공의들에게 전문지식과 더불어 알토란 같은 지혜를 나눠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는 말로 또 한 차례 업그레이드될 재활의학과의 내일을 예고했다.

“사실 별들은 자신만의 빛을 지구로 보내고 있는데 이 우주의 색이 지구인에게는 저마다 다른 색으로 보이는 거래요. 까만 하늘의 하얀 별은 그러니까 우주의 오묘한 빛깔을 잘 모르는 지구인들의 눈에 보이는 양상일 뿐이고요. 지구에 없는 빛이라서 말예요. 의사로서 저는 환자 개개인이 지닌 고통과 의지와 꿈을 읽어낼 줄 아는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쉽진 않겠지만 부단히 정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환자도, 저도, 우리 병원도 찬란하게 제 빛을 발할 날이 오겠죠.”

오늘도 늦은 밤 병원을 나서는 김태곤 교수의 어깨에는 그가 도저히 내려놓지 못하는 재활의학 관련서적이 한아름 얹혀 있을 것이다. 무겁다는 불평은 잊은 지 오래다. 그 안에는 책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삶의 의미와 그가 꿈꾸는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김태곤 교수의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것은 그를 반짝이는 별로 변신시켜줄 그만의 광활한 우주인지도 모르겠다.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여주고 싶어 김태곤 교수는 종종 ‘별 보기’ 놀이를 권하고 있다. 병마에 주눅 들었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약해진 어른들이 환한 웃음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나니, 바쁜 일정 틈틈이 짬을 내어 취미활동을 공유하게 됐다. 환자와 상담하고 치료하고 연구하고 강연하는 매 순간, 밤하늘이 알려준 인생의 순리를 되새기며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글. 윤진아 / 사진. 김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