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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실 통신
5월의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져 가는 교정을 따라 오늘도 저는 병원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캠퍼스 곳곳에서 풋풋한 대학 새내기들을 볼 때마다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는데 어언 18년이란 세월을 이 언덕길을 오가며 제 젊은 시절 대부분을 지내 왔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선 환경 속에서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가던 18년 전 신규 간호사의 모습은 이제 한참 어린 후배 간호사들의 모습 속에서 아스라이 떠올려질 뿐입니다. 3교대 근무에 적응하면서 손끝의 미세한 떨림조차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혈관을 찾을 때는 왜 그렇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던지요. 그때부터 항상 침착하자고 저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어떤 일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렇게 한길을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주사실로 온 것은 저에게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주사실은 서관 6층의 한 귀퉁이에 화살표를 쫓아 찾아오기도 힘들었던 곳에 있었습니다. 서관 6층의 리모델링을 시작하면서 주사실이 환자분이 찾기 쉬운 곳으로 이전하게 되고 오가는 직원들에게도 편안하고 익숙한 곳으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저 또한 리모델링이 진행되면서 관계자들과의 회의에 참석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고민하며, 커튼 색깔을 고르고, CD player를 설치하는 등의 고민을 하면서 주사실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습니다. 마침내 Open식을 치르고 가슴 가득 설렘을 느끼면서, 제가 만들고 꾸민 공간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사실 병동에서 근무할 때는 환자, 보호자들만 대하다가 외래라는 전혀 다른 부서에서 환자 대면업무 외에 행정적인 업무, 타부서 직원들과의 협조 요청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할 때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에피소드들이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추억일 따름입니다. 아줌마 특유의 기질로 직접 달려 내려가서 떼도 써보고, 안 되면 되게 해달라며 큰 소리도 쳤지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때때로 저 자신도 놀랍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께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모델링 이후 주사실은 그야말로 외래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겹고, 힘들면 쉬어가고 싶고, 어떤 이야기보따리도 풀어놓을 수 있는 쉼터 같은 곳입니다. 간혹 침대가 모자라 미처 눕지 못하셔서 의자에 앉아 주사를 맞으면서도 환하게 웃으시며 침대료라도 빼달라는 농담으로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는 환자에게 알사탕 2개로 애교를 부리며 서운함을 달래기도 합니다. 생후 6개월 된 귀염둥이 갓난아기에게 주사를 놓을 때는 안쓰러워하시는 아기 부모님의 마음을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헤아리며 최선을 다해 혈관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주사를 맞으면서 하염없는 푸념이나 인생 상담을 늘어놓으시는 어르신들의 고민을 들어 드리며 같이 고민해 보다가 웃음보따리가 풀려 한바탕 웃으면서 그 아픔과 고민을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기도 합니다. 병원에 오실 때 마다 꼭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시는 분. 집에서 직접 재배하셔서 모양은 없지만, 무 농약이라며 과일을 싸 들고 오시는 분. 주사는 맞지 않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겠다며 들렀다 가시는 분들. 안 보이면 궁금해하시며 오히려 우리의 안부를 물어 주실 때는 그분들의 가슴 따스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곤 한답니다. 웃음과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객의 그늘지고 주름진 삶의 한 자락에 한 움큼의 미소라도 얹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항상 미소와 웃음이 떠나지 않는 푸근한 주사실이 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친절이란 가식 없는 진실이 우러나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 보며 오랜 시간 장작불에 은근히 우려낸 구수한 숭늉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뿜어져 오르는 시원한 분수처럼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고 고객들의 마음속 궁금증이나 답답함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착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오늘은 유난히 외래 항암치료 환자들이 많으셔서 많이 바쁠 것 같습니다. 글/ 김희나 한양대학교병원 주사실 주임간호사 [사랑수첩] 오늘 실천한 사랑이 타인의 내일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믿는 한양대학교의료원 임직원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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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의 진수 "아프냐? 나도 아프다", 정민성 교수
참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 좋은 목소리에 유머감각까지 갖췄다. 생김새처럼 동글동글, 모나지 않은 순한 성격에, 웃으면 눈이 다 사라지는 사람 좋은 살인미소는 또 어떻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를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궁극적으로 치유하는 고수의 기술이다. 외과계의 떠오르는 젊은 피 정민성 교수는 “한참 모자란 제가 이런 인터뷰라니, 어불성설”이라는 그다운 말로 겸손하게 입을 열었다. 소년, 의사가 되다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아 동네 소아과 단골손님이었지요. 의사선생님의 커다란 손이 제 얼굴을 만지기만 해도 시원하게 열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면서 벌써 다 나은 것 같았어요. 어린 마음에 그 다정다감한 손, 온화한 미소에 반해 이다음에 나도 크면 꼭 훌륭한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대사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꼭 그를 두고 한 말 같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유별난 감수성의 소유자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면 어떻게든 빨리 치료해주지 않으면 자신도 아픈 것 같고, 환자가 고통을 못 이겨 울고 있으면 그도 눈물이 난다. 외과의사로서 냉철한 판단은 필수지만, 그에 더해 환자를 향한 측은지심이야말로 의사 정민성을 더욱 분발하게 하는 힘이다. 평생을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살아오던 분들이 암을 겪으며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동받곤 해요. 어떤 분은 ‘유방암은 내 삶의 축복이었다.’라고도 하셨지요. 끝없는 항암치료와 수술, 전이, 재발을 반복하며 웃어도 웃는 게 아닌 환자들 앞에서 의사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요. 안주하지 않고 정진하며 환자를 돕는 좋은 의사가 될 겁니다. 소통의 미학, 치유의 기술 유방암 환자의 상실감은 다른 암환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방암으로 수술 받은 환자의 24%가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유방암을 치료하는 의사지만 일단 자신은 생물학적으로 남자인 터라, 대다수의 여자 유방암 환자들을 돕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안다. 정민성 교수가 2008년 한양대학교병원 유방암 환자 환우회 ‘핑크한양’을 만든 이유다. 치료에 앞서 밝고 긍정적인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 정 교수는 환우끼리 교감하고 정보도 교환하며 자신감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2008년 8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정민성 교수에게서 수술을 받은 김수임(62) 씨는 “처음 유방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덜컥 겁부터 났지만 선생님과 상담하고 나서 차츰 안정도 찾고 나을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어요.”라고 귀띔하며 “꼼꼼하고 자상한 선생님 덕분에 씩씩하게 회복해가는 중이에요. 핑크한양 모임에 나가며 우울증도 많이 극복했고요. 암 치료하면서 탈모가 생겨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트렌드 세터’라는 칭찬까지 들어봤다니까요(웃음).”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유방암・갑상선 종양 클리닉에서 매주 200명에 가까운 외래환자를 진료하는 것 이외에도 정민성 교수는 짬이 날 때마다 암 센터 건강강좌에서 강의를 진행, 암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알리는 데 힘을 쏟는다. 소년 정민성에게 다정다감하게 손을 내밀었던 의사 선생님처럼, 외과의사 정민성은 오늘도 초심을 꼭 잡고 환자들에게 ‘살 맛’ 가득 안기는 참이다 . 글/윤진아 자유기고가, 사진/하지권 [안녕하세요,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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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열려 있었음은 곧 스스로 길을 열었다는 뜻이니
한양대학교병원 조재림 진료명예교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지금, 내게 주어진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과 마주하면 좌절하기 마련이다.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다시 무언가로 태어나고 싶지도,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인생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인생을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한양대학교병원 조재림(66) 진료명예교수의 인생 2막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인생 1막, 길이 열리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가만히 되밟아보면 정해진 대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길이 그렇게 열려 있었던 것이에요.” 다섯 살 때인가, 여섯 살 때인가. 6.25동란 피난 중 그림에서만 보았던 개구리를 잡아 요리조리 살피던 남자 아이는 작은 곤충의 움직임에도 큰 관심을 갖곤 했다. 그래서 수의대나 농대를 진학할 마음을 품었으나 길은 이미 정형외과 전문의로 열려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본분에 충실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젊은 시절, 단 한 순간도 학업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결과는 곧 길이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니 길이 그렇게 열려 있었다는 말은 곧 스스로 길을 열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1960년대 말 연세대학교 의학대학을 졸업한 뒤 육군 군의관을 거쳐 한양대학교병원과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 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세월의 두께가 점점 더해 갈수록 드는 묘한 깨달음이다. 인생 2막, 고맙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후회 없이 물러나는 자리에서 간단한 인생 이력과 그간 의료현장에서 귀하게 얻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할 때, 앞으로 편히 쉬겠다는 생각 대신 더욱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었다. 정년퇴직과 동시에 다시 정형외과 전문의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은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준 후배들에게 너무도 고마웠어요. 그러니 당연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작심이 설 수 밖에요.” 무사히 인생 1막을 마무리 질 수 있었던 것도 고마운 일인데, 또 한 번 일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 고마움이야말로 어찌 크지 않을 수 있을까. 요즘 젊은 시절보다 더욱 즐겁게 일을 하는 데는 바로 그 고마움이 단단한 뒷심으로 작용한다. 병원장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다시 자리바꿈을 한 것을 빼고는 달라지지 않은 삶. 그래서 더욱 고마운 인생 2막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는 중이다. 인생 3막, 새로운 꿈을 꾸다 “만약 내게 또 한 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것이 내 길이면 자연스럽게 열리지 않을까요.” ‘2000년 동아일보가 선정한 척추 베스트 닥터’로 선정되기도 한 노년의 실력 있는 의사가 새롭게 꾸는 꿈 역시 같은 선상 위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꼭 가야 할 길이면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리라 믿는다. 언제쯤이 될지, 어디여야 하는지 굳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먼저 손짓을 해 줄 것이므로. “나는 아직도 ‘선생님 덕분에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로 들립니다. 또 그처럼 기분 좋은 일도 없어요. 8시간의 수술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어떤 힘든 수술도 거부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렵고 긴 수술을 거듭 할 수 있게 한 힘의 소리. 가능하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싶은 것 또한 인생 3막에서 꾸는 꿈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걷고자 하는 많은 후배들이 단 하나라도 무언가를 배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가 배우는 학생일 때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한창 바쁘던 시절의 정형외과 전문의일 때는 어떠한 어려운 수술도 다 감수하고, 강단에 섰을 때는 생각의 차이가 큰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모든 분들과 후배들에게 더욱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글/손미경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인생예찬] 한양대학교의료원의 임직원이 만들어가는 ‘의미’있고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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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단상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린다는 것이 참 불편하고 가급적 피해가고 싶은 일임을 절감하면서도 때로는 그 생경한 문 앞에서 약간의 흥분과 설렘을 느끼게 됩니다. 학부시절 어렵게 용돈을 모아 도이치 그라마폰사의 노란색 라벨이 선명한 라이센스 음반을 구입한 후 비닐 커버를 뜯기 직전에 느꼈던 감정과 흡사한 기분을 요 며칠 경험하면서 새삼스레 지난 28년간의 임상간호사 생활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정기적인 부서이동으로 지난 5년간 근무했던 11층 외과병동을 떠나 19층 내과병동으로 옮긴 지 한 달 남짓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변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리고 주변을 돌아봅니다. 내과병동 근무가 처음은 아닌데도 외과병동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아직도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최근에 리노베이션을 마친 병동이라 모든 면에서 한결 깨끗하고 쾌적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고 기존의 문화에 동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린다는 것이 참 불편하고 가급적 피해가고 싶은 일임을 절감하면서도 때로는 그 생경한 문 앞에서 약간의 흥분과 설렘을 느끼게 됩니다. 학부시절 어렵게 용돈을 모아 도이치 그라마폰사의 노란색 라벨이 선명한 라이센스 음반을 구입한 후 비닐 커버를 뜯기 직전에 느꼈던 감정과 흡사한 기분을 요 며칠 경험하면서 새삼스레 지난 28년간의 임상간호사 생활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입사 초기의 신산스런 기억도 바로 엊그제 일인 양 말갛게 떠오르고 병동에서 조우했던 숱한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도 더러 생각납니다. 혈육 같은 끈끈함으로 교대근무의 고단함을 함께 나누던 동료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그립습니다. 자주 세상의 리듬과 어긋났음에도 우리는 씩씩하게 명동과 대학로의 골목길들을 누비고 다녔지요. 퇴근 후에는 무조건 병원 건물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듯 내달릴 만큼 병원생활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늘 생과 사가 교차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보람과 기쁨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간혹 TV 드라마나 매스컴에 어설프고 품위 없이 묘사되는 간호사들의 모습에 분개하여 제대로 된 메디컬 드라마 극본을 쓰겠다는 뜬금없는 바램을 품기도 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제 자신이 그다지 운이 좋다거나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별로 없지만 임상간호사로서 내과병동과 외과병동 및 신경정신과병동을 두루 경험함과 동시에 겸임교수로서 오랜 기간 정신간호학을 강의할 수 있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하느님과 세상의 여러 이웃들, 특별히 제가 만났던 환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문학을 전공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열등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으며 저의 은사님들처럼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의 길을 가겠다는 소명감 또한 지니지 못한 위인입니다. 그러나 강산이 세 번쯤 변할 정도의 긴 시간 동안 ‘간호’라는 한 길을 걸어온 자로서 이 세상의 수많은 직업 가운데 그래도 일생을 걸어 볼만한, 괜찮은 전문직 중의 하나가 간호사임을 확신합니다. 그런즉 자신의 전 존재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킨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간호정신의 끝자락에 간호에 대한 저의 책임감과 소박한 열정을 기댈 수 있다면 돌보는 자, 가르치는 자로서 크게 부끄러운 삶은 살지 않겠구나 싶습니다. 페인트 냄새가 아직 덜 가신 19층 병동에서 내려다보는 5월의 캠퍼스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제가 이미 만났거나 앞으로 만나게 될 환자분들께 사도 요한의 말씀에 제 마음을 실어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요한의 셋째 서간 1,2) 페인트 냄새가 아직 덜 가신 19층 병동에서 내려다보는 5월의 캠퍼스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제가 이미 만났거나 앞으로 만나게 될 환자분들께 사도 요한의 말씀에 제 마음을 실어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요한의 셋째 서간 1,2) 글/ 애정희 한양대학교병원 19층 병동 수간호사 [사랑수첩] 오늘 실천한 사랑이 타인의 내일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믿는 한양대학교의료원 임직원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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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을 실천하는 희망 전도사, 김미정 재활의학과 교수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재활의학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다정한 행동 때문에 김미정 교수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그를 잊지 못한다. 재활의학과를 선택했던 순간부터 그 동안 만났던 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내내 그의 눈에서 따뜻한 열정이 비춰졌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김미정 교수 재활의학과의 치료는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을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아픈 건 순간이거나 평생일 수 있는데 좋은 것만 생각하면 정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마세요.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재활의학과 미용사를 꿈꾸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동경을 했었다. 중학생이 된 후 남녀 급여의 차이가 거의 70%가 된다는 뉴스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성차별이 없는 의사를 평생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의대에 진학했다. 전공을 결정 할 때 쯤 앞으로 20년 후,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평균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우리나라의 재활의학의 필요성이 높아 질 것이라는 지인의 권유로 재활의학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재활의학은 환자를 오래 지켜 봐야 하며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 과임을 알게 되어 더욱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인생의 60%를 노인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성의 부재에 노인재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소아는 어른의 미니어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성인과는 완전히 다른 생물학적 특징을 가진 소아들을 위해 더더욱 전문적인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소아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곳은 큰 대학병원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과 소아에 대한 애정이 크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이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소명 때문에 재활의학과 중 노인재활, 소아재활 전문의가 되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치료 재활의학과 의사로 지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병원비 등의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가족 간의 어려움 등이 동반되어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는 환자이다. 다른 과와 달리 재활의학과의 치료는 대개 장기적인 치료를 하게 되므로 가족이나 주변의 정신적, 경제적인 지원이 매우 중요하고, 환자의 예후와도 밀접한 관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듯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에서 버려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환자를 가족들에게만 부담 지우는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사회적인 배려 시스템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재활의학과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가족,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회적 지원 제도가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긍정의 힘을 믿어요 재활의학과의 치료는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을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아픈 건 순간이거나 평생일 수 있는데 좋은 것만 생각하면 정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마세요.” 의식이 없던 환자가 인사하며 퇴원하는 경우도 봐 왔다며 이런 일들이 힘든 순간이 있어도 의사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글/ 오미연 사진/ 하지권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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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소파 대신 사랑의 의자에 앉다. 최일영 명예교수(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조용함 속에서 행하며, 진실로 하는 바가 없노라 한다. 최일영 교수 역시 그러하여 각종 매체에서 뵙고자 하는 청을 여러 번 거절해 왔었다. 그러나 수십 년 간 몸담았던 곳으로부터의 간곡한 청을 끝까지 내치지 못한 것은 아주 특별하고 오래된 정 때문이었다. 하여 참으로 고맙고 조심스러운 마주 앉음이었다. 2005년 9월은 최일영 교수에게 아주 특별한 숫자로 기억된다. 40여년간 몸담았던 한양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의 문을 마지막으로 나섰고, 5일 후 음성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내과의 문을 처음 열고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해 최일영 교수의 나이 66세. 안락한 소파 대신 사랑의 의자에 앉은 날, 함께 한 것은 꽃동네를 둘러싼 자연과 아프고 병든 2천여 명의 이웃들이었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꽃동네에서의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는 진료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생인데, 온 몸으로 품어 주고픈 이웃들의 삶의 풍경은 왜 그리도 구구절절하고 애달픈지 늘 마음이 쓰이고 또 쓰였다. “매주 화요일 저녁 꽃동네를 출발한 차가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10여명의 노숙자들을 싣고 옵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깨끗한 목욕과 충분한 잠으로 몸과 마음을 녹인 뒤인 이튿날 이뤄지는데, 진료 중 각자 지닌 사연들을 풀어 놓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잠깐의 진료와 그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일 뿐입니다.” 그 중에는 현실을 벗어난 말로 뜨악하게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한 번은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던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며“제가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아시지요?” 하기에 진심으로 “그래요, 잘 했습니다.” 칭찬하니 선한 눈빛이 더 고와짐이 느껴졌다. 다르다 여기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며, 낮은곳에서 낮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품으니 저절로 같은 눈높이가 됨이었다. “매주 화요일에는 또 청주성심노인요양원을 직접 방문해서 노인분들을 진료하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90세가 훨씬 넘으셨고, 치매도 있었지만 어찌나 유머감각이 좋으신지 병실을 늘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셨지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상과 그들의 세상을 크게 구분 짓지만, 최일영 교수는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안다. 그때마다 크다 작다, 좁다 깊다, 짧다 길다 비교하지 않으면 비극은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동서양의 깨달음과 마주한다. “얼마 전 대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티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물속의 돌은 햇볕에 쪼이는 돌의 고통을 모른다’고 말입니다.” 일요일 늦은 저녁 혹은 월요일 이른 새벽, 최일영 교수는 햇볕에 쪼이는 돌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누고자 다시 꽃동네로 향한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몸담고 있던 시절 불리던 ‘교수’라는 칭호를 벗어버리고 꽃동네 ‘내과의사’라는 낮은 이름으로 간호사도 없는 쪽 방만한 진료실의 문을 연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안락한 소파 대신 선택한 사랑의 의자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연과 아픔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가능한 그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글/손미경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인생예찬] 한양대학교의료원의 임직원이 만들어가는 ‘의미’있고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1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