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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한 ‘준비된 의사’ 김희진 신경과 교수
행복하고 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한 '준비된 의사' -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 전도유망한 성악가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인생역전 평생 품었던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의 심정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이유가 원인이라면, 더욱 미련이 남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바뀌지 않은 꿈이기도 했고, 저 스스로도 노래하는 것이 무척 행복해서 당연히 성악가가 되어야지 마음먹게 되었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정식으로 성악수업을 받다가 습관성 하악 탈구가 생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얼마나 좌절했던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속상하고 슬퍼했던 기억이 납니다. 2, 3옥타브가 오가려면 공명을 위해 입을 크게 벌려야 하는데 턱이 자꾸 빠져버리는 현상은 성악가에게 치명적이다. 수술을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김희진 교수.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그런지 동료 교수들이 농담처럼 부르는 ‘비운의 성악가’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20대를 돌이켜보면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성악 이외에 다른 길은 생각도 못해 본 터라 포기하기까지 방황의 시간이 있었고, 겨우 마음을 추슬러 대학 입시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쓴맛은 다 경험해본 기분이었어요. 이듬해 한양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하면서 내내 순수과학과 의학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김희진 교수. 당시의 쓰라린 인생 경험이 신경과 전문의로서 사명감을 심어준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는 어려운 인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책임지며 선택한 길이었기에 전도유망한 성악가에서 지금처럼 환자의 마음을 아우르는 신경과 전문의로 변신한 모습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그녀다.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선택한 신경과와의 인연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시도 있듯이 필경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고민거리는 아무래도 진로 결정이 아닐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진학하면서 막연히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지만, 어떻게 그들을 도울지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 김희진 교수는 또 다시 잠깐의 방황을 해야만 했다. "환자의 인지 기능과 의식 상태를 다루는 신경과는 상당히 어려운 학문이고, 무엇보다 전공의 수준에서 다른 과 교수님들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과이기도 합니다. 다른 과에 비해 발견된 것이 많지 않고, 현재 2% 정도만 알려져 있어 앞으로 연구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었죠." 의학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도전하기까지 김희진 교수는 참 많은 길을 돌아왔지만 그때 갈등하고 고민해 온 것들이 환자를 대하는 데 있어 다양한 경험으로 작용해 굉장한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저에게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환자가 아파도 얼마나 아픈지, 힘들어도 얼마나 힘든지 100%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느꼈던 다양한 경험들이 없었으면 삶의 고통이나 아픔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 거예요." 아픈 경험을 해본 이들은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상대를 품을 줄 안다. 현재 한양대학교병원과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와 퇴행성질환, 뇌혈관질환을 전문진료 분야로 하는 김희진 교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병동의 어르신들을 부를 때도 ‘어머니, 아버지’라 다정스럽게 부르고 살갑게 대한다. 내리사랑이라고들 하잖아요,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녀들은 부모를 그렇게 사랑하지 못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외로운 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그분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길동무가 되어 드리는 이 일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입니다. 아직 시작하는 입장이어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김희진 교수는 환자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복지나 주변 환경, 웰빙 등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복한 100세 시대를 위한 수호천사 현재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50만 명을 넘어섰고, 보건복지부가 추정하는 환자 수보다 훨씬 더 빨리 늘어나 2036년이 되면 300만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는 뚜렷한 치료약이 없어 증상을 완화시킬 뿐, 이미 뇌세포는 없어져버려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젊음의 묘약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 그래서 김희진 교수는 ‘케어’의 개념보다 ‘큐러블(CURABLE)’, 즉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세포 치료는 물론 좋은 신약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가운데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고 치료하고자 노력한다. 모든 질환이 다 그러할 테지만, 특히 치매는 환자는 물론 가족까지 고통 받는 경우가 많아 지켜보는 입장에서 매 순간이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상황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조발성 치매로 찾아오신 55세 여자환자 분이 계신데, 센터로 오셨을 때는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성격장애가 이혼 사유였는데, 그것이 치매 증상이었던 사실을 부부가 몰랐던 거죠. 지금은 남편을 전혀 못 알아볼 정도로 위중해지셔서 남편 분이 매일 병동을 찾아와 우시는 모습을 보면 저희도 가슴이 아파요." 치매 환자는 케어가 중요해서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 모두 24시간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멀쩡했던 보호자도 치매에 걸리기가 쉬워 부부 모두가 치매에 걸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는 김희진 교수. 간병 부담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라도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함께 고민하며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60대 이후지만 치매를 일으킬 수 있는 병리가 시작되는 것은 30, 40대부터 입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인지능력이 정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면 차라리 30, 40대부터 건강관리에 힘써 나쁜 외부 충격으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것이 추후 발생하게 될 노년기 질환을 막는 최선의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사는 병이 생기면 과감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김희진 교수. 그는 비록 우리 세대에서는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노화를 정복할 수 있어 사는 동안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세상이 열리길 소망하고 있다.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조금 기다려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실수도 실패도 영광도 결국 끝까지 좋은 것도 없고 또 끝까지 나쁜 것도 없어요. 당장 어렵고 힘들더라도 조금 기다려보면 틀림없이 길이 보일 것입니다. 너무 힘들 때에는 손을 내밀어보는 것도 괜찮아요. 초조해하지 마세요,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201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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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다하는 날까지 산山과 함께 살으리랏다! - 김두숙 간호과장
보는 것만으로도 사춘기 소녀가 된 양 가슴 설레는 대상이 있다면,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할까.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정형외과 김두숙(57)간호과장에게는 ‘산’이 바로 그런 존재다. 산의 맛을 알게 되면서 생의또 다른 가치를 깨닫게 된 까닭이라는데……. 산이 곧 그녀이고, 그녀가 곧 산일 수밖에 없는 이치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산 수려한 풍광만큼이나 산세가 도도하기로 유명한 도봉산.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등산객들 틈으로 김두숙 간호과장이 범상치 않은 에너지를 풍기며 등장한다. 올 4월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인터넷 서클 3050그린산악회의 암벽등반이 이뤄지는 날이기 때문. 도봉산에서도 가장 험하다는 ‘경송B’ 길을 거쳐 선인봉(仙人峰)에 오를 예정이다. “암벽등반의 명소로 인기가 많죠. 처음이냐고요? 아니에요. 하지만 들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답니다. 제가 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죠.” 김두숙 간호과장이 본격적으로 산을 접하게 된 것은 1999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다음이었다. 약 1년 동안의 집중 항암치료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된 그녀를 독려해 무작정 불암산에 오른 남편의 고집이 결정적 계기였다. 그렇지만 당시 김두숙 간호과장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심신이 쇠약해진 암 환자에게 강요하다시피 ‘산에 가자’ 제안하고 촉구하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죠? 마냥 힘들고 짜증스럽기만 한 그날의 산행이 한숨 자고 나니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거예요. 뭐랄까……, 너무 그립더라고요.” 결국 김두숙 간호과장은 남편이 소속된 산악동호회에 가입, 국내 유명산들을 돌며 워킹-릿지-암벽 등 유형별 등반 기술을 익혔다. 특히 암벽등반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주었다. 종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희열’ 그 자체였다. 이후 김두숙 간호과장은 투병 중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암벽등반에 매진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닿지 못하는 지점에 발을 딛을 때의 쾌감은 지상의 그 무엇보다 중독성이 강했다. 어느덧 8년째, 그간 김두숙 간호과장을 괴롭혀 온 암세포들마저 이제는 말끔히 자취를 감췄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산은 나의 스승이자 동반자 암을 극복하는 과정과 암벽등반은 공통점이 아주 많습니다. 둘 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거든요. 지게 되면 처참해지는 것 역시 둘 다 똑같죠. 따라서 암벽등반을 통해 꾸준히 쌓아온 정신력이 암을 치유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 듯합니다. 산이 제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지요. 암벽등반은 김두숙 간호과장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매사 자신감을 갖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 하면, 생소한 업무에도 과감히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1년에 한 번씩은 꼭 해외에서 암벽등반을 할 계획입니다. 작년에는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높다는 말레이시아의 키나바루 산에 다녀왔는데, 암벽등반을 시도한 20명 중 7명만이 성공했고 그 가운데 유일한 여자가 저였답니다. 올 8월에는 일본의 후지산과 북알프스를 정복하기도 했죠. 내년에는 네팔로 트레킹을 갈까, 생각 중입니다.” 체중의 절반가량이나 되는 장비를 지고 산등성에 몸을 싣는 김두숙 간호과장의 발놀림이 놀라우리만치 가뿐하다. 가파른 경사를 만나도 호흡 한 번 흔들리지 않는다. “원칙에 충실할 뿐이죠. 늘 겸허한 자세로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중요해요. 자만하다가는 자칫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거든요. 암벽등반을 하기 전이면 저 또한 언제나 기도로 마음을 가다듬는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산과 더불어 숨 쉬기를 희망한다는 김두숙 간호과장. 산행 4시간 만에 깎아지른 듯한 선인봉(仙人峰) 암벽 위에 선다. 그리곤 로프와 하나가 돼 리드미컬하게 점프를 시도한다. 청대같이 말간 천공을 벗 삼은 그녀, 드디어 새처럼 날아오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갯짓이다
201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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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오늘 더 뜨겁게 "내 이름은 '로커(Rocker)'입니다!." 정태성 한양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계장
흔히들 꿈은, 꿈으로 간직하고 있을 때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조언한다. 현실과 이상은 전혀 다르다는 게 그 이유. 한양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정태성 계장은 “도대체 왜?”라고 반문한다. 아마추어 록그룹 ‘정(情)밴드’의 보컬로 활약하며 현실과 이상 두 마리 토끼를 전부 거머쥔 그의 아름다운 열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 경이로운 생生이여~ 가을장마가 시작된 어느 일요일 저녁. 정태성 계장을 만난 곳은 공연마니아라면 누구나 안다는 소극장 롤링홀(마포구 서교동)이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록그룹 ‘정(情)밴드’가 아주 특별한 행사에 참여하게 된 까닭. “인천에 위치한 장애 영·유아 시설 동심원을 후원하기 위한 자선콘서트가 열리는 날이거든요. 저희를 비롯해 직장인 밴드 셋이 함께하고, 수익금은 전액 기부됩니다. 조만간 한양대학교병원 소아병동을 위해서도 따스한 시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정태성 계장이 ‘정(情)밴드’ 결성을 결심하게 된 것은 8년 전, 인근의 한 클럽에서였다. 농익은 에너지를 있는 힘껏 폭발시키는 한 록그룹의 공연을 본 후 명치끝이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찌르르해져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고. 생계를 꾸리느라 까맣게 잊고 산 지난날들의 열망이 다시금 용솟음친 순간이었다. “되든 안 되든 우선 해보자, 이 한 가지만 생각했어요.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중요했으니까요. 이런저런 여건들에 연연하고 미루기에는 세월이 너무나 아까웠어요. 그간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젠 조금 쉬어가도 괜찮겠다 싶었고요. 제 생애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결정이었습니다. 하하하!” 한 달이면 2~3회에 걸쳐 무대에 오를 만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情)밴드이지만, 현재가 있기까지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리더로서 음악적 개성이 강한 멤버들의 의견을 하나로 취합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 그렇지만 정태성 계장은 한 번도 힘들다 여긴 적이 없었다. “음악을 하지 못하고 지냈던 시절, 그 공허와 슬픔이 얼마나 큰 지 익히 경험하고 난 다음이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소소한 마찰쯤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죠. 또 밴드가 성장하려면 이러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해요. 지금은 서로 얼굴만 봐도 속을 다 알 수 있을 정도죠.” Everybody, Stand Up! 덕분에 정(情)밴드는 실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게 됐다. 유수의 직장인밴드대회들에서 끊임없이 우승트로피를 차지했고, 최근에는 KBS 2TV 인기 프로그램 ‘탑(Top)밴드 시즌2’에 출전해종합 2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가수이자 작곡가 유영석 씨가 당시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무대’라는 심사평을 해주셨어요. 감동적이었죠.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유명인사답게 정(情)밴드는 팬들도 참 다양하다. 특히 중장년층의 지지가 대단하다. 잠재의식 속 청춘을 일깨우고 대변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정(情)밴드야말로 그들에게 있어 로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는 자작곡으로 구성된 정규앨범도 출시할 계획이다. “저희 공연이 있는 데라면 어디든 달려와 주시던 한 형님 팬이 계셨어요. 항상 맨 앞에 앉아 저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열렬히 응원하던 열혈 팬이었죠. 고마운 마음에 보답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멤버들과 상의 끝에 형님이 평소 좋아하신다는 곡들을 연습해 깜짝 공개하기로 했어요. 근데, 정작 공연 날 형님이 안 오셨어요. 아쉬웠지만 바쁘신가보다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후에도 계속 안 보이셨어요. 영 이상해서 수소문을 해봤죠. 저희가 형님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한 바로 그날, 급성간경화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더군요. 그 소식을 듣고 아픈 가슴 가눌 길이 없어 멤버들과 몇날 며칠을 울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情)밴드에게 그 형님은 여전히 힘이 되는, 최고의 팬이랍니다.” 드디어 정(情)밴드가 무대에 오를 차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정태성 계장이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멤버들과 마지막 점검에 나선다. 하얀 스크린이 올라가고 정(情)밴드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자 거센 환호성이 장내를 가득 메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일어서 강렬한 비트에 몸을 싣는 관객들. 화려한 조명이 정태성 계장의 파워풀한 헤드뱅잉 위로 눈부시게 흩어진다. 하드록의 진수를 몸소 펼쳐 보이는 정(情)밴드 속 정태성 계장.그는 영락없는 로커다. 글 이소영 / 사진 성종윤
20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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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고객과 같은 곳을 바라보다 - 한양대학교병원 고객지원센터
열린 마음으로 고객과 같은 곳을 바라보다 최초의 각인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정 대상을 평가하는 잣대가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병원의 첫인상을 책임지는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대면하게 되는 ‘고객지원센터’이다. 그리하여 한양대학교병원은 금년도 고객지원센터를 대대적으로 개편, 고객들의 행복 지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칭찬보다 꾸중에 귀 기울여 고객 만족도 향상과 브랜드 가치 창출을 주목적으로 올 2012년, 새롭게 단장한 한양대학교병원 고객지원센터는 총 4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진료협력센터·전화예약센터·검사통합예약센터·고객상담센터가 그것!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성동구의사회를 비롯 지역의료기관들과의 네트워크 역할을 자처하는 ‘진료협력센터’는 SMS 등 각종 소통수단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뢰환자의 진료정보를 전달, 보다 신속하고 적확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위급상황이나 야간전원에 대비해 응급실 전용 핫라인을 구축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인력 충원과 더불어 콜백서비스(Call-Back Service)까지 강화한 ‘전화예약센터’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인터넷예약 모니터링 시스템을 보완한 것은 물론, 각과 예약업무를 통일하여 외래전화를 최소화하고 있다.검사예약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무에 적용 중인 ‘검사통합예약센터’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고객들의 검사대기 일수를 대폭 단축시키며. CT실이나 심장초음파실 등 각 진료과에서의 예약 스케줄을 단번에 조회할 수 있게 된 덕이다.‘고객상담센터’에서는 고객관리를 위해 VOC(Voice Of Customer)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 개선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원내 곳곳에 고객의 소리함을 설치하여 수시로 내용을 확인 및 반영하는 것도 그 때문. 덕분에 한양대학교병원은 최근 고객들로 하여금 매우 긍정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이밖에도 한양대학교병원 고객지원센터는 ‘전자사례집(E-BOOK)’ 운영을 시작, 고객들의 불만사항들을 전 직원이 공유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데최선을 다하고 있다. 반갑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한양대학교병원 고객지원센터가 수행하는 서비스들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부문은 바로 7월 1일 개설된 ‘처음 오신 분 전용 창구’이다. 한양대학교병원의 환경이 다소 생소할 첫 내원 고객들의 편의를 위한 곳. 이로써 고객들은 이제 예약, 수납, 안내, 진료상담에서부터 타 병원이 의뢰한 영상CD 접수 등까지 원하는 서비스를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처음 오신 분 전용 창구’의 기능은 비단 이에 그치지 않는다. 고객들이 제기한 불편사항들을 두루 수렴해 업무 개선 및 발전 자료로 활용하는가 하면, 고객의 의문점을 끝까지 해결해주기 운동 등 관련 캠페인을 기획하여 병원 내 ‘친절 설명 문화’ 정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직원들은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고객의 심부름꾼이 되리라’는 자세야말로 우리 한양대학교병원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동력이 될 테니까요. 이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한양대학교병원 고객지원센터 이항락 소장은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 직원들의 친목도모에도 최선을 다한다. 최상의 서비스는 조직원들 사이의 단합과 배려에서 발아하기 때문이다. 애정을 갖고 쓴 소리를 건네는 고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는 이항락 소장. 고객지원센터가 있어 한양대학교병원의 내일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 글.이소영 · 사진.성종윤
20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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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한양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모두의 엄마가 되고픈 빅마마 이현주 한양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다소 빠른 템포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따르자, 신생아실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이른둥이 여럿이 보인다. 누군가의 배가 아파 낳은 자식 중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을까마는, 이른둥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괜시리 애처로워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호스나 관 등에 기대어 간신히 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여린 아기들. 이들을 무한 사랑과 남다른 실력으로 돌보는 이가 있어, 작고도 작은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둔 초보엄마이자 소아청소년과 신생아들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 한양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이현주 교수를 만나보았다. 그녀가 구해온 그리고 구할 어린 생명 이현주 교수가 한양대학교병원과 인연을 맺은 지는 이제 겨우 2년 남짓. 2010년 9월에 부임한 이래, 24시간이 모자라게 쉼 없이 달려온 이 교수는 항시 강조하는 Compassion과 Passion 가운데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는 소아청소년과의 오늘을 만들고 있다. “처음부터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어 부담도 큰 편이었죠. 진료뿐 아니라 전공의들의 교육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정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마다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시는 타 과 선생님들, 오랫동안 한양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를 살피시며 기틀을 만드신 선배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한결 수월하게 미숙아 및 신생아 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아이를 임신해 얼마 전 건강하게 출산한 엄마로서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고요.” 이 교수가 매일같이 돌보고 있는 신생아중환자실 내 신생아집중치료실은 최근 몇 개월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그 중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의료장비를 고정해 사용할 수 있는 ‘펜던트(Pendant) 시스템’의 도입이다. “일반 신생아보다 여러모로 건강하지 못한 미숙아들은 호흡곤란증, 개방성 동맥관 개존증, 괴사성 장염, 천공 등 여러 질환에 쉽게 노출됩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언제든지 최악의 위기상황에 처해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 있고, 외부의 조그만 자극에도 민감해 한시도 한눈을 팔 수 없죠. 그래서 도입하게 된 것이 의료전선·가스·모니터·인공호흡기 등의 장비가 천정을 통해 내려와 한 번에 설치, 환자들을 신속하게 집중 치료하도록 도와주는 펜던트 시스템입니다.”라고 설명하는 이현주 교수에게서 어린 환자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묻어났다. 소중한 내 아이보다 더 귀하디 귀한 이른둥이들 현재 소아청소년과 신생아중환자실(NICU)의 미숙아 및 신생아 집중치료는 그 어느 때보다 주목 받고 있다. 미숙아 치료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자 해외연수를 간 박현경 교수가 만들어 놓은 한양대학교병원 신생아중환자실만의 ‘미숙아 치료 가이드라인’에, 이현주 교수가 최신 치료법과 경향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여 1kg 미만의 미숙아 생존률을 98%까지 끌어올리려 노력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현주 교수는 간호사, 전공의들과 함께 시스템 개선과 여러 연구를 거듭해 나간 끝에 그들만의 노하우를 하나둘씩 구축해가며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선보이고 있다. “대학병원이 갖춘 장점인 교육 커리큘럼을 철저히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간의 주치의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이야말로 대학병원만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결과물이었죠. 마치 군대와 같은 일원화 된 체계를 다른 방면에서도 확립해, 미숙아들의 생존율을 100%로 만들어가려 합니다.”라며 그녀는 다부진 어조로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얼마 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신의 아이를 출산한 이현주 교수. 미숙아들이 정상아보다 솔직히 더 사랑스럽고 예뻐 보인다며 이른둥이에 대한 무한애정을 표하는 그녀에게서, 한 아이만의 엄마가 아닌 모두의 엄마가 되려는 커다랗고 고귀한 그 무엇을 체감할 수 있었다. “출산 후, 신생아를 둔 부모들과 상담할 때마다 가슴이 찡해지는 걸 보면 저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 것 같습니다.”라며 그녀는 엄마이자 의사로서의 삶 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글.전채련·사진.김선재
201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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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신장실 36주년, 따스한 감동의 물결 속에서~
한양대학교병원이 개원 40주년을 맞은 지난 5월 3일, 인공신장실 역시도 오픈 36주년을 함께 기념하고자 투석환자 분들과 조촐한 자축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976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인공신장실의 역사를 기억하며, 20년 이상 꿋꿋하게 투석생활을 해오신 환자 분들을 격려하고 그 동안 본원 인공신장실을 찾아주신 환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습니다. 인공신장실 실장이신 이창화 교수님의 진행으로 시작된 1부 행사에서는 신장내과 강종명 교수님의 격려사에 이어 20년 이상 본원에서 투석을 해오신 환자 분들께 의료진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기념품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환자 대표인 이관수(남, 62세) 님은 21년째 투석을 하시는 분으로서 행사를 개최해준 의료진들에게 큰 고마움을 표시하시며 감개무량해 하셨습니다. 참석한 다른 환자 분들에게도 의료진에 대한 신뢰로 희망을 잃지 않고 투석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도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셨습니다. 인공신장실 간호사들과 전공의, 환자 분들이 어우러져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합창할 때는 잔잔한 감동의 눈물을 훔치시는 환자 분들도 더러 계셨습니다. 박자를 놓칠세라 조용히 따라 부르시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우리 간호사들에게도 진한 감동, 그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동영상으로 인공신장실 36년의 역사를 조명하는 시간에는 과거의 모습을 통해 발전된 현재의 모습을 재확인하며 함께 헤쳐나가야 할 미래를 가늠해보기도 했습니다. 1부 행사 후에는 15명의 인공신장실 간호사들이 손수 장만한 음식들과 함께 의료진과 환자 분들이 격의 없는 담소를 나누며 여흥의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인공신장실을 잠시 떠나 열린 공간에서 같이 웃고 호흡하며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진행된 2부 행사에서는 한양대학교병원 간호사들로 구성된 발 마사지 봉사자들이 환자 분들 및 환우 가족 분들의 딱딱하게 굳은 발을 정성껏 마사지해 드렸습니다. 자신들의 건강한 온기와 사랑의 온정을 조금이라도 더 환자 분들에게 전하고자, 눈을 맞추고 끊임없이 교감하시는 모습은 환자 분들께 큰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발 마사지를 받으신 후 따뜻한 차 한 잔을 드시며 함께 마사지를 받지 못한 다른 환우 분들을 챙기시는 환자 분들의 모습까지, 이 모두는 우리 간호사들에게 그 어떤 찬사보다도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투석을 위해 병원을 찾아주신 환자 분들과 환우 가족 분들의 노고에 비한다면, 몇 시간 동안의 행사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36년 동안 쌓인 사랑을 풀어낼 수 있었기에 부족한 가운데서도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투석이라는 어렵고 힘든 길의 동반자로서 의료진들과 환자 분들이 서로 소통하며 교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습니다. 글. 박미라 한양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 수간호사
201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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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카리스마, 이춘용 한양대학교병원장 (비뇨기과 교수)
부드러운 카리스마 속에 묻어나는 의사로서의 진.정.성. 그 사람이 가진 좋은 기운은 상대방까지 전염시키는 힘이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더하지 않아도 가슴속 따뜻한 진심이 그대로 전달되는 사람. 소탈하고 격의 없는 화법으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건네는 말 한 마디마디에 강한 의지와 신념이 느껴지는 사람, 그가 바로 이춘용 병원장이다. 자연스러운 이끌림으로 걸어온 의사의 삶 1970년 처음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뿌리를 내린 이래 42년의 긴 세월을 줄곧 한 병원에서만 보낸 이춘용 병원장.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20대와 원기 왕성한 30, 40대, 그리고 중년의 50대를 거쳐 오는 동안 이 곳 행당산 자락은 청춘의 한 시절을 기록하게 해 준 꿈과 희망의 터전이기도 했다. 글쎄, 왜 의사가 됐을까? 큰 의미가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좋아보였던 것 같아요.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냥 막연히 의사라는 직업에 끌린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길이 천직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춘용 병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이 세상에 온전히 남을 위해 고민하고 밤을 세워가며 노력하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게 된다. 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 의과대학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기, 그 가운데 ‘수술하는 의사’에 대한 매력을 느껴 전공을 비뇨기과로 정했고, 이후 변함없이 지켜온 평생의 업이 되었다. 42년을 비뇨기과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장 먼저 체감하는 변화는 아무래도 수술기술일 터.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시간이었으니 그간 변화된 의학기술의 발전사를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는 이가 바로 이춘용 병원장이 아닐까 싶다. "비뇨기과 수술 가운데 예전에 제일 많았던 것이 결석 수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개복을 하다가 조금 더 발전해서 작은 구멍을 뚫는 방법을 사용했고, 그 다음 체외충격파세석기에 이어 나온 것이 복강경 수술입니다. 비뇨기과 초창기에 시작해서 지금의 로봇 수술까지 우리 병원에 처음 도입하게 된 수술을 다 맡아온 것 같네요." 1997년 복강경 수술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이춘용 병원장은 직접 제작한 아크릴 모형으로 수술 시뮬레이션을 반복할 정도의 열정을 보였다. 처음 해보는 수술이라 손에 익을 때까지는 부단한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다 이렇게 훈련을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검은 천을 두른 아크릴 박스는 사람의 인체였고, 그 박스 안에 카메라를 부착하여 복강경을 이렇게 저렇게 끼우기도 하고 빼기도 연습을 했죠. 그때 만든 장비가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일인데 자칫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 없는 법, 환자는 실험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늘 의사는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평생 철칙으로 알고 지켜온 의사로서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경당문노(耕當問奴)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아야 오랜 연륜의 의사들에게는 삶의 훈장과도 같은 수많은 기억들이 가슴속에 아로새겨져 있기 마련이다. 이춘용 병원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으니 ‘의사는 좋았던 기억은 금세 잊어버리지만 쓰라린 순간들은 늘 가슴에 남겨두고 사는 사람들’이라 말하고 웃는다. 그간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동안 이런 저런 추억들이 참 많죠. 얼마 전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는데 이십여 년 전 제게 수술을 받았던 환자여서 기억에 남네요. 버스에 깔려 한쪽 다리를 절단한 꼬맹이였는데, 소변을 볼 수가 없어 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아마 세상에서 욕을 제일 잘하는 친구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엄청 애를 먹였었어요.(웃음)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니 마음의 상처 또한 컸다는 것을 잘 헤아렸기에 아마도 이춘용 병원장은 어린 환자의 투정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때의 어린이가 이제 서른 나이의 성인 되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정중한 안부 인사를 올렸으니 아마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이춘용 병원장은 그 전화를 받고 무척이나 기뻐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는 의사로서의 철학을 ‘경당문로(耕當問奴)’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농사짓는 일은 머슴한테 물어보는 것이 제일 낫듯이 모든 분야에서 각기 전문가가 되어야 최고의 노하우를 발휘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를 대함에 있어 그들의 가족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진단이 끝나고 수술이나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 만약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해요. 의사로서 할 것인가, 만일 자신의 가족이라면 과연 그 방법을 선택하겠느냐 고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하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아울러 환자들에게도 유명한 병원만을 쫓지 말고, 환자 많은 의사만을 쫓지 말며 저 의사가 나에게 얼마나 시간을 줄 수 있느냐 보고 선택할 것을 강조한다. 이제는 한양대학교병원의 새로운 기틀을 다질 때 올해로 한양대학교병원이 40주년을 맞았다. 말 그대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를 맞아 이춘용 병원장은 병원경영 효율화를 위한 내실 다지기를 중점사업으로 내걸고 있다. "병원은 환자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부 인력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고, 환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여 내실을 기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지요. 이와 맞물려 대학병원들이 주력하고 있는 특성화된 진료 시스템 구축에 대해서도 암센터, 심혈관질환진료 등의 활성화를 통해 발맞춰 나갈 계획입니다." 단순히 외견 확장을 통한 개선보다는 환자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안으로부터의 발전을 모색하겠다는 이춘용 병원장. 소위 말하는 백화점식, 호텔식 병원 경영을 지양하고 가정같이 편안하고 정성스러운 진료를 하는 병원으로 새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어려운 중책이 주어져 어깨도 무겁고 부담도 되지만 마지막으로 모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만큼, 한양대학교병원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각오를 하고 있다는 이춘용 병원장. 그의 표현처럼 40년 손맛이 우러난 ‘맛있는 병원’처럼 ‘작지만 큰 병원, 수술을 잘하는 병원,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으로 한양대학교병원이 자리매김할 그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 이춘용 한양대학교병원장
201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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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성열씨 -박성열 비뇨기과 교수
의사, 엄친아, 매의 눈, 신의 손, 가공할 암기력, 의외의 수다 신공, 그리고 호빵맨.박성열 교수를 생각할 때 우선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다 그를 제대로 몰랐을 때 얘기다. 왜 이토록 이 일이 좋은 걸까 ‘호빵맨’이라는 별명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의사다. 그만큼 환자들이 친근하고 가깝게 여길 수 있으니 행운이라는 너스레에 미소가 고인다. 수술과 수술 사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박성열 교수를 만났다. 시침 뚝 떼고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의 모습은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의사 아저씨라고 했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든단다. 그의 손을 거치면 앓던 속이 시원해진다는 소문이 무성하니 이쯤 되면 천직이라는 표현이 나올 법도 하지만, 대신 ‘제일 즐겁고 그래서 제일 잘하게 된 일’ 정도로 합의를 봤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변보기가 어려워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크게 늘었어요. 그중 전립선비대증의 경우, 질환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나이가 들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니 여겨 치료시기를 놓치고 병을 키운 사례가 많고요. 방광기능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콩팥 기능까지 망가진 환자들도 부지기수예요. 전립선비대증은 특히 초기에 잘 치료하고 관리하면 정상적인 생활이 충분히 가능한 질환이거든요. 간단한 검사를 거쳐 한 시간도 안 되는 레이저 수술로 완치할 수 있지요.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환자들이 더없이 편안한 상태로 퇴원하시는 걸 보면 제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세월의 훈장과도 같은 어르신들의 주름을 마주할 때마다 경건해진다. ‘단 하루만이라도 시원하게 소변 보고 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어르신들의 하소연은 더 없는 원동력이 되어준다고 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퇴행성 질병을 겪게 되지만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시기를 늦추거나 증세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엄격한 의사이자 다정다감한 아들이 되어 세심한 전방위 치료에 나서는 박성열 교수가 잔소리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그는 ‘잘못된 습관을 하루라도 빨리 버려라.’라고 들볶는다. 어르신들의 고통해소뿐만 아니라 고령화 시대 인생 2막의 열쇠인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비뇨기과 의사로서의 기본 덕목이라는 말에 힘이 실렸다. 성공률 높인 치료법 개발, 최우수 논문상 쾌거 매일매일 시작되는 새날. 자기 앞의 생에 더없이 성실한 모든 존재에게 훈장처럼 새 몸을 선물하는 시간들. 박성열 교수에게 연구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유쾌한 작업이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데 희열을 느끼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호기심은 속속 신선한 연구성과를 선보였다. 박성열 교수는 지난해 7월 개최된 ‘2011년 대한내비뇨기과학회 제18차 학술대회’에서 신결석의 치료에서 이전에 실패한 체외충격파 쇄석술이 경피적 신결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이춘용 교수와 함께 개복 전립선적출술과 복강경 전립선 적출술의 장점을 모두 활용한 새로운 수술법인 ‘복강경 보조 근치적 전립선적출술’을 개발했다. 환부 절개는 최소화 하면서도 집도의가 수술 부위를 넓게 볼 수 있어, 환자의 수술 부담을 높이지 않으면서 수술 성공률을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수술법이다. 국내 정상급 규모와 실력을 갖춘 한양대학교병원 비뇨기과는 그동안 비뇨기암 수술법 개발에 앞장서 왔다. 1990년대 비뇨기암 복강경 수술의 국내 도입을 주도한 이래 새로운 암 수술법을 선도적으로 적용해왔고, 2000년에는 복강경을 이용해 신장암 환자의 신장을 적출하는 수술을, 2008년에는 로봇 수술과 단일절개 복강경 수술을 도입·적용하고 있다. 한양대학교병원 비뇨기과 의료진은 지금껏 전 세계에서 개발된 모든 방식의 비뇨기암 수술법을 이용해 수술할 수 있는 드림팀으로도 명성이 높다. 로봇수술의 대가이지만 박성열 교수는 환자들에게 “현재 나와 있는 시술 방법 중 최선으로 꼽히는 것뿐,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전립선암은 발견 시기에 따라 치료방법이 다릅니다. 개복, 복강경, 로봇수술 3가지 방법 중 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게 로봇수술이지요. 다른 수술법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싼데도, 환자들 사이에서는 수술법이 제일 정교하고 효과 또한 월등하다고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분명히 좋은 면도 있지만, 전립선암 치료효과 면에서는 사실상 3가지 수술법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거든요. 특히 로봇수술은 의사가 환부를 직접 만져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고요. 국내 정상급 규모와 실력을 갖춘 한양대학교병원 비뇨기과는 그동안 비뇨기암 수술법 개발에 앞장서 왔다.한양대학교병원 비뇨기과 의료진은 지금껏 전 세계에서 개발된 모든 방식의 비뇨기암 수술법을 이용해 수술할 수 있는 드림팀으로도 명성이 높다.다양한 임상경험을 토대로 환자 개개인의 상태와 특성에 맞춰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하는 박성열 교수는 암 치료 후 관리까지 세심하게 개입한다. 한양대학교병원 비뇨기과에서 수술받은 환자들은 매년 ‘전립선 친우회’에 참석해요. 이 모임에는 저뿐만 아니라 비뇨기과 의료진이 모두 참석해, 발기부전과 요실금 등 합병증 관리법을 알려주고, 환자들과 대화를 통해 건강 상태를 면밀히 체크합니다.환자들 또한 함께 공연도 관람하고 식사도 같이하면서 서로 건강관리 정보를 공유하고요. 치료받은 사람들과 의료진이 이렇게 정기적으로 만나며 유대관계를 다지면 암 재발을 막는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주치의와 친구 사이 뼛속까지 냉철한 의사인 것만 같은 박성열 교수는 간혹 짬이 날 때면 드라마를 보면서 폭풍눈물을 흘리는 감수성 여린 남자이기도 하다. 최근엔 김선아 씨가 시한부 환자를 연기한 ‘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오열을 했더랬지요. 누가 볼까봐 참느라 고생 좀 했어요(웃음). 제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허구의 이야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그나마 드라마를 보며 울 수 있는 날은 손꼽을 만큼 드물 정도로 사생활은 포기한 지 오래다. 혹독한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이곳에 그가 찾던 ‘존엄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람냄새 나는 의사’라고 했다. 박성열 교수에게 병원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동시에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는 담소의 공간이자 독한 잔소리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깨알 같은 수다와 웃음을 치료약 삼아 즐기는 동안, 박성열 교수는 환자와 한 뼘 더 가까워졌다. 기왕이면 더 큰 웃음까지 선물하고자 개그 트렌드도 면밀히 분석한다는 그는 “짧은 시간 안에 환자들을 편안하게 해 줄 화두를 이끌어내고, 나아가 ‘빅 재미’까지 뽑아낸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귀띔했다. 가슴 뻐근한 정(情)을 담으며, 먼 훗날 정겨운 진료실 풍경으로 기억될 추억이야말로 치유수다 공작소, 박성열 교수 전매특허 스페셜 서비스다.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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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의 화살에 한양대학교병원의 명예를 싣다 -진성민 한양대학교병원 기계계 직원
고르고 고른 한 발에는 지난날의 노력이 실려있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가며 과녁을 향해 초점을 결정하는 자태에는 지난날의 성실함이 어렸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참가하는 대회지만 한양대학교병원의 이름이 한 발 한 발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땀에는 긴장이 배었다. 양궁을 통해 한양대학교병원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다고 말하는 듬직한 궁사, 진성민 직원이 한양대학교병원의 로고를 달고 양궁대회에 출전했다. 듬직함 속에 숨은 날카로운 눈빛 진성민 직원의 뚝심 있는 말투와 듬직한 풍채는 소와 닮았다. 특히 하루를 제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라는 성실함은 속도는 느리지만 거센 풍파 속에서도 절대 방향을 잃지 않으며 천리를 간다는 우보(牛步)를 연상하게 한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그도 날카로워질 때가 있으니, 바로 활을 잡을 때다. 매해 6번 정도 열리는 컴파운드보우(Comfound Bow)동호인대회에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는다는 그. 이제 경기를 즐길 때도 되었건만 이번 ‘한국산업양궁연맹회장기 실내양궁대회’에 임하는 진성민 직원의 자세는 조심스럽기만 하다. “원래 경기는 즐긴다는 기분으로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처음으로 한양대학교병원의 로고를 달고 출전하니까 개인으로 출전할 때보다 책임감이 들어서 긴장되네요.” 망원경으로 각도를 맞추고 신중하게 활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은 중앙의 노란점에 ‘탁’하고 맞았다. 아뿔싸, 만점에서 살짝 빗겨나간 화살. 최고 점수인 10점구역은 50원짜리 동전보다 작다고 하니 그 실력만은 만점으로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그가 컴파운드 양궁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정직함이다. 연습한대로 실력이 느는 것이 금방 눈에 보인다고. 더불어 잡념과 스트레스를 화살과 함께 날리는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단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병원에서 진성민 직원이 맡고 있는 업무는 병원의 시설물을 보수하는 일이다. 환자들의 병을 덜어주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사실 제 역할이 잘못되면 병원업무 전체가 정지되죠. 보일러 부분이 가장 그래요. 난방뿐 아니라 의료기 소독이 안되니 수술이나 치료도 힘들어지죠.” 업무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진성민 직원은 모든 것을 꼼꼼히 체크하고 침착하게 문제를 개선해나가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양궁이 큰 역할을 했다. 전에는 포기가 잦았지만 뚝심이 생기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이제 그는 쌓아둔 실력을 장애인 양궁동호회원들을 지도하며 나누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지도했던 장애인 선수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 뿐이 아니다. 리커브 양궁에서 도태된 어린 선수들을 컴파운드 양궁으로 전향시켜 좋은 성적을 냈다. 그의 마지막 재능 나눔의 목표는 병원의 식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몸을 먼저 닦아야 가정과 나라, 나아가서 천하를 능히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궁사의 도로 매주 자신을 닦는 그가 공자의 말씀에 잘 어울린다. 아직 다스릴 가정도 없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 하지만 성실한 자세와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씨는 벌써 천하를 호령하는 제왕을 닮아있다.
201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