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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동호회 '요한사랑'
함께 움직이며 함께 호흡하는 시간 활기찬 봄의 기운을 안고 몸이 가벼워지는 계절이다.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양대학교병원도 활기찬 움직임으로 가득해졌다. 4년 전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 ‘요한사랑’은 2주에 한 번씩 체계적인 요가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낸다. 함께 몸을 움직이며 체력을 높이고, 함께 호흡하며 친화력을 높이는 이곳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황원희 사진. 이승헌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 심신을 단련하는 움직임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이 바로 요가(Yoga)이다.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요가는 호흡과 명상을 중심으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한양 대학교병원 동관 4층의 작은 회의실에서 요가 모임을 하는 ‘요한사 랑’은 ‘요가를 사랑하는 한양대학교병원 직원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2012년부터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오후 5시 45분이 되자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회원들이 하나둘 회의실로 모인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개인 매트를 깔고 준비 운동을 하면서 몸을 푼다. 요한사랑의 회장직을 맡은 병리과 윤성원 계장은 회원들의 출석을 체크하며 수업 준비를 돕는다. 이윽고 요한사랑의 강사인 사회복지팀 성명순 과장이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먼저 몸을 이완할게요.” 성명순 과장의 청아한 목소리에 회원들은 익숙한 듯 매트에 누워 눈을 감고 몸 전체의 힘을 뺀다. 혀끝부터 발끝까지 들숨과 날숨의 호흡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의 몸에 집중한다. 업무로 지친 몸과 마음이 천천히 치유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20명이 넘는 회원들로 북적거리지만 처음 시작은 마음이 맞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은 모임이었다. 한양대학교병원 내에서 요가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모였고,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던 성명순 과장이 강사직을 흔쾌히 승낙하면서 한양대학교병원의 요한사랑이 탄생했다. “제가 2006년에 정식으로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환자, 보호자 그리고 직원들을 위해 봉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요한 사랑이 그 꿈을 실현하게 해 준 셈이죠.” 성명순 과장은 사랑을 실천하는 한양대학교병원처럼 자신 역시 직원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하다고 말한다. 요가를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함께 치유되는 순간이다. 체계적인 수업이 가져온 건강한 변화 “누운 상태에서 무릎에 힘을 주고, 발끝은 몸쪽으로 당기세요.” 동작 하나하나에 성명순 과장의 상세한 설명이 더해지자 눈을 감은 채로도 동작이 쉽게 그려진다. 전문 강사의 요가 수업 덕분에 요한 사랑은 단순한 동호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몸의 관절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태양 예배 체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회원들에게 매번 다양한 동작을 선보이며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정적인 동작과 동적인 동작을 번갈아 반복하며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몸의 구석구석까지 호흡이 전달될 수 있도록 동작을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물론 모든 동작은 호흡과 명상으로 연결된다. “마음이 아프면 몸에서 반응이 먼저 나타나요. 우리가 통증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죠. 결국, 육체를 먼저 다스려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요. 요가 수업을 통해 회원들이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성명순 과장의 바람대로 수업을 꾸준히 들은 회원들은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몸의 건강한 변화는 곧 마음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요가를 배운지 2년 정도 되었는데 가벼운 동작은 공간의 제약 없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하면서 요가 동작을 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어깨가 결리면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해요. 덕분에 어깨 통증이 확실히 줄었어요. 몸이 건강해지니까 일을 할 때도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인사총무팀 비서실 성외순 과장은 일상생활에서도 요가 동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건강한 몸과 에너지를 얻었다. 요가를 통해 단 순히 건강한 신체뿐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도 함께 찾은 것이다. 2년 전 여름부터 요가 수업을 들어온 외과 곽미정 간호사도 “상체를 숙이는 게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잘 숙여요. 특별한 운동 없이 요가만으로도 몸의 근육이 풀어지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아요”라며 앞으로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다짐한다. 언제나 활기찬 요한사랑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회원들 모두가 마무리 동작을 준비한다. 매트 위에 엎드린 채 엉덩이를 위로 올리고 몸은 앞으로 늘리는 고 양이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매트 앞쪽에 서서 손을 합장한 채 하늘 위로 팔을 쭉 올리는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몸의 긴장을 풀고 호흡을 가다듬는 데 집중한다. 회원 모두가 서로에게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수업은 마무리된다. 진지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진행되었던 수업이 끝나자마자 요한사랑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반가운 대화를 나누느라 회의실 가득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2년 전부터 요한사랑의 회원이 된 원무팀 양복자 계장도 그중 한 명이다. “요가에 관심이 있었던 차에 요한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2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외래에서 업무를 하다 보니 어깨가 많이 결렸는데 요가 수업을 들은 후로는 뭉친 근육이 조금씩 풀리면서 어깨 통증이 많이 줄었어요. 꾸준하게 운동을 하니까 효과를 보는 것 같아요. 업무 중에 쉬는 시간에도 요가 수업에서 배운 스트레칭을 활용하니까 자세도 좋아지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회원들의 직종이 다양한데 함께 모여서 운동도 하고, 친해질 기회도 마련되는 것 같아 수업이 정말 즐거워요.” 요한사랑은 사무직, 간호직, 보건직 등 다양한 분야의 한양대학교병원 교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직접적인 업무적 연관성은 없는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함께 운동하고 소통을 하면서 친 밀도는 더욱 높아진다. “저희가 단합이 잘 돼요. 운동이 끝나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정말 반갑게 인사하죠. 그럴 때마다 함께 운동을 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면서 새삼 기분 이 좋아져요.” 총무직을 맡은 재무팀 최향숙 계장은 요한사랑을 통해 회원들과 함께 웃으며 운동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요한사랑은 앞으로도 요가를 통해 더 많은 교직원의 삶의 질이 높아지길 바란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요한 사랑은 오늘도 함께 움직이며 함께 호흡한다. Mini Interview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 스트레스는 저절로 사라져요" 업무에 열중하다 보면 스트레스는 쌓일 수밖에 없어요. 다만 스트레스를 쌓 아두지 않고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죠. 우리는 호흡과 명상 에서 그 답을 찾았어요. 육체를 먼저 다스려야만 마음을 다스릴 수 있거든요. 요가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마음의 평온 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성명순 과장 한양대학교병원 사회복지팀
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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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알려주고 가족이 되어주신 분” - 유대현 류마티스내과 교수님께 보내는 편지
“의지를 알려주고 가족이 되어주신 분” 모든 병이 쉽게 완치에 이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끔은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병도 있다. 젊은 시절 루푸스 진단을 받고 오랜 시간 각종 합병증을 겪어야 했던 이옥연 님. 그러나 늘 밝은 표정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리. 박여민 / 사진. 이승헌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유대현 교수님께 어느새 교수님을 알아온 세월이 20년을 넘었습니다. 30, 40대부터 저는 온갖 병마와 싸워야 했고, 오랜 고통으로 힘들던 시기에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과 유대현 교수님께서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셨죠. 루푸스라는 희귀병을 진단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방법을 찾지 못했던 저는 생활의 터전이었던 전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온갖 합병증이 겹치며 한 때 사경을 헤맬 정도로 힘든 시간도 겪어야 했지만,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돌봐주신 교수님 덕분에 이렇게 버틸 수 있었어요. 처음 교수님을 만났던 1991년부터, 지금껏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따스하게 대해주시는 교수님을 생각하면 이제 가족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셀 수 없이 잦았던 수술과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 때 늘 유대현 교수님께서 제 곁에 있어 주셨어요. 꼼꼼하게 상태를 확인해주시고, 진료와 치료는 물론 우리 가족들에게도 마음을 써주시는 모습을 보며 불안함을 잊고 믿음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처음 이곳을 찾았던 시절보다 피부나 두피의 상태도 몰라보게 깨끗해졌음을 느낍니다. 특히 표정이 밝고 환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더욱 건강해지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되곤 합니다. 제 병은 완치가 어렵고, 합병증도 많은 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한때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교수님을 만나 이렇게 지금의 제 상황에서 용기를 가지고 생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힘을 내서 더 밝고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직은 힘들지만 조금씩 운동을 하고 관리도 잘 해나가겠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감사합니다. 이옥연 드림 이옥연 님께 문득 이옥연 님을 처음 만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아직 전임의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루푸스와 쇼그렌병의 복합적인 증상이 나타나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병원을 찾기 전부터 많은 고생을 하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푸스는 자가면역질환 중의 하나로, 여러 가지 종류의 자가 항체가 몸의 여러 곳에 이상이 일으키며, 쇼그렌병은 외분비기관의 문제로 침샘, 눈물샘 등이 파괴되면서 건조해지고, 건조 부위에 염증이 생겨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병입니다. 1993년부터 제가 담당을 맡아오며 함께 많은 합병증을 겪어야 했습니다. 콩팥에 병도 생겼고, 결핵과 늑막염이 찾아온 적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늘 저와 우리 의료진을 믿고 잘 따라와 주셨죠. 특히 25년 전 처음 병원을 찾으셨던 때보다 더 젊고 건강해 보이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저는 새삼 ‘희망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깨닫게 되곤 합니다. 특히 이옥연 님께서 잘 이겨내실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끊임없는 응원과 사랑 덕분일 겁니다. 어린 학생이던 아들과 딸이 이제는 다 커서 여전히 따뜻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이번 입원은 루푸스로 인한 비결핵성 마이코 박테리아 감염(NTM)이 이차적으로 일으킨 폐렴 때문이었으나, 이제 폐렴은 치료를 마치고 NTM만 좋아지면 다시 퇴원을 고려하셔도 좋을 듯해요. 루푸스는 완치가 어렵지만, 증상이 언제나 발현하는 병도 아니어서 잘 달래며 평생 관리를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좋아지고 계시니, 지금은 무엇보다도 영양 공급을 잘 해주시면서 건강상태에 신경을 쓰셔야 할 때입니다. 늘 희망을 잃지 말고 지금처럼 환하게 웃으시길 바랍니다. 유대현 드림 고마운 당신에게 | 한양대학교의료원 앞으로 도착한 감사의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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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가 웃어야 얼굴이 웃고 환자가 웃어야 의사가 웃습니다 - 고주연 피부과 교수
‘여드름 피부 세안법’, ‘뾰루지 응급처방’, ‘악건성 피부 보습에 좋은 모이스처라이저’ 등등, 한 포털사이트 지식인을 보니 피부 관련 질문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피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을 방증하는 것일 터.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고주연 피부과 교수는 피부 건강을 되찾아 환자들의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주는 피부웃음전도사다. 피부가 웃어야 비로소 얼굴이 웃는 거라고 그녀는 말한다. 글. 임지영 사진. 김재이 어릴 적 슈바이처 위인전에서 찾은 숙명 “안녕하세요? 병원 오시는데 춥진 않으셨어요?”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환자를 맞는 고주연 피부과 교수에게는 보 는 이들에게까지 활기를 전염시킬 것 같은 특유의 ‘에너지업’ DNA가 있다. 상처 재생과 레이저 치료에 있어서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 로 꼽히고, 미래의 피부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배울 점이 많은 선배이자 스승으로 인식된다. 고주연 피부과 교수는 KBS 비타민,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SBS 뉴스 등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스타 닥터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KBS 비타민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EXID의 하니에게 얼굴 부위 별로 ‘두 개의 비누를 사용하라’는 피부 관리 비법을 전수해 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관심의 영역이 폭넓었던 그녀는 어린시절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아이였다. 인물전, 위인전을 즐겨 읽던 그녀에게 유독 와 ‘꽂힌’ 것은 슈바이처였다. 책으로 읽고 감동을 느낀 슈바이처 박사의 사명감과 봉사 정신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하지만 대학 진학 을 앞두고 있을 무렵, 그녀의 관심은 온통 개발과 엔지니어링에 쏠려 있었다. 남다른 도전, 실험정신에 잠시 함몰되어 공대에 진학했다 1년 만에 방향을 선회한 데에는 ‘조금 늦더라도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다는 열망이 크게 작용했다. 다시 시험을 치뤄 의대에 진학한 그녀는 비로소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어릴 적 슈바이처를 읽으면서 어렴 풋이 느낀 숙명을 본과에 들어서면서 깨달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예과보다 본과에서 더욱 공부를 잘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차석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누렸다. “본과로 진학해 병원을 돌고 직접 환자들을 만나면서 더욱 재미있어졌어요. 크든 작든 결국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잖아요? 갈 길을 제대로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전공을 피부과로 정한 것은 그녀가 피부에 관심이 많은 여자라서가 아닌, 피부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라고 생각해서다. “피부는 건강면에서나 미용면에서나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부위인 만큼 누구나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특히 질환이나 콤플렉스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요.” 피부는 건강, 영양, 노화상태를 일러주는 바로미터 피를 말리거나 분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가 없는 대신, 눈에 보이는 트러블로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피부과 전문의의 최대 고비다. 빠른 시기에 눈에 띄게 좋은 효과를 본 환자는 그만큼 기뻐하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낙담하거나 화를 내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의사에게 피부과질환 진료와 치료는 ‘감정 노동’이 수반되는 과정이다. “빠른 경과에 만족하시는 환자들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두고 추이를 지켜보며 치료해야 하는 환자들의 경우 인내심을 잃고 감정이 폭발하기도 해요.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니까요. 그 점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흉터나 상처는 치료하면 언젠가는 좋아질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환자들이 받는 스트레스까지 해소해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차라리 의사의 진료와 처방에 따르면 좀 더 쉽게 나을 것을, 조급한 마음에 상처나 질환 부위를 건드리다가 환부를 더 키우기도 한다. 개인병원은 점이나 기미를 없애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대학병원인 만큼 보다 심각한 질환으로 찾는 환자들이 많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대학병원 피부과 전문의로서 자부심과 보람도 느끼지만, 가끔 인내심을 잃고 돌발행동을 하거나 내원을 중단하는 환자를 경험하게 되면 의사로서 솔직히 속이 상하는 건 사실이다. “물집질환같은 자가면역계 이상으로 인한 피부질환은 아무리 국소 부위라 할지라도 장기치료를 요하는게 사실이에요. 독한 치료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거나 내원빈도에 비해 가시적 효과가 떨어진다고 중도포기하신 환자가 있었어요. 한의원도 가보고 산속 에 들어가 민간요법을 쓰기도 했던 모양이더라고요. 결국 상태가 더 악화되어 다시 병원을 찾으셨어요.” 어렵사리 다시 병원에 발걸음을 한 그 환자에게, 고 교수는 처음과 똑같이 ‘인내’를 강조했다.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없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 것. 그 대신 의사를 믿고 따라주면 분명 거울을 보며 웃게 되는 날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십 년 만에 물집질환을 치료한 그 환자가 이제는 딸과 함께 그녀를 찾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른 세월의 무게만큼, 그리고 조용히 지켜진 약속만큼 어느덧 탄탄한 신뢰가 쌓인 것이다. “일 년이면 만 명이 넘는 환자를 봐요. 그 중에는 물집질환이나 루푸스처럼 장기 치료를 요하는 환자들도 상당수 있지요. 아마 저만큼 많은 물집질환, 루푸스 환자를 치료해본 의사도 많지 않을 거예요. 성급한 개선효과에 집착한 나머지 속 끓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걸릴 뿐, 피부 질환은 언젠가는 치료가 되는 병이니까요.” 웃음 찾은 환자들이야말로 가장 큰 에너지의 원천 그녀는 피부 또한 이해와 소통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받 으면 악화되고, 상태를 이해 못하면 나빠진다. 피부는 체내건강과 노화 정도까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에 평소 관리가 중요하다. “피부 관리법이요? 아주 간단해요.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수분과 자외선 차단.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무리 흐린 날이더라도 모이스처라이저와 자외선 차단제는 꼭 잊지 마세요. 모이스처라이저는 피부가 촉촉해질 정도로 듬뿍, 자외선 차단제는 진정한 차단 효과를 위해 자주 덧발라주시는 게 좋아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은근히 어려운 팁. 어쩌면 우리는 너무 적은 모이스처라이저와 단 한 번의 자외선 차단제로 그동안 엉터리 피부 관리를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더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에요. 당연히 피부에도 적이죠.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충분한 물을 섭취한다면 금상첨화고요. 건강한 피부를 지키려면 뭐니 뭐니 해도 즐겁게 사는게 최고예요!”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바쁜 일정 속에서 가끔 시간을 훔쳐 즐기곤 하는 운동과 영화는 그녀에게 숨 쉴 틈을 허락하는 유일한 취미이자 오아시스다. 최근에는 영화 암살과 사도를 극장에서 봤다. 암실에서 가진 두 시간여의 휴식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여가를 즐길 여유가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은 연구에 몰두하려고 해요. 레이저기기를 만드는 회사와 현재 함께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있어요. 논문이 빨랫감처럼 밀려있는 상태죠 (웃음). 부지런히 논문을 써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지금은 시간이 더 주어진다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없네요.”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해외 연수는 고 교수에게 새로운 도전 플랫폼이다. 공부도 맘껏 하고 싶고 이 참에 글로벌 인맥도 쌓아 앞으로 국내 의료의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픈 생각이다. “피부병리를 더 연구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치료 수준은 이미 세계 정상급에 도달해 있어요. 문제는 진단이에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조직 검사를 하는데, 조직 검사를 얼마나 잘 판독하느냐가 치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죠. 피부병리와 함께 우리병원의 강점인 류마티스 관련 피부질환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볼 생각이에요.” 환자가 좋으면 의사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천상 의사 고주연 교수. 울상으로 대기실에 앉았다가 환한 얼굴로 진료실을 나가는 환자의 웃음꽃은 오늘도 그녀를 웃게 하는 엔도르핀이자 힘찬 발걸음으로 병원 곳곳을 누비게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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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흉부외과 정원상 교수님께 보내는 편지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서도, 방치하면 끝내 돌이킬 수 없으리란 것도 알았지만 신승오 님은 망설여야 했다. 농흉의 2차 감염으로 시작된 각혈을 보면서도 힘든 형편에 수술비 걱정이 앞서던 그때, 한양대학교병원 정원상 교수가 그의 손을 잡았다. 정리. 박여민 사진. 강민구 든든한 힘이 되어 주신 정원상 교수님께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으니 이른 아침부터 혼자 병실을 돌아보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환자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며 건네시던 따뜻한 말씀과 그 마음 덕분에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런 각혈로 동네병원을 다닌 지 일주일, 참기 힘든 통증이 계속됐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권유에 한양대학교병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비 걱정에 망설일 때, 정원상 교수님께서는 “우선 살고 봅시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죠. 그렇게 시작된 입원과 함께 진행된 신속한 수술은 제겐 너무 갑작스러운 일들로,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후, 정원상 교수님께서 제 사연을 전달해주신 덕분에 병원 사회복지팀에서 수술 기금을 마련해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병원비 마련이 여의치 않아 수술을 포기하려고 했던 저에게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 희망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제게 희망과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그리고 수술비마련에 힘을 보태주신 한양대학교병원의 모든 직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상태가 많이 좋아진 저는 더 이상 입에서 피가 나오지도 않고 아직은 느린 걸음이지만 마음껏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하루빨리 건강해지는 모습만이 저에게 주신 응원과 도움의 손길에 보답하는 것이란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승오 드림 신승오 님께 신승오 님께서 병원을 찾으셨을 땐 각혈이 상당히 심한 상태였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오른쪽 폐가 모두 하얗게 농으로 차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된 것으로 추측되는 농흉으로 인한 피와 고름이 폐와 기관지까지 번져있어 한시라도 빠른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가슴에 차있던 피와 고름을 모두 씻어내는 수술에 9시간여가 걸렸습니다. 힘든 수술이었지만 잘 견뎌내시고, 많이 좋아지신 신승오 님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제가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남아있는 폐가 자연적으로 다시 늘어나 가슴에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애초에 너무 심각해진 상태로 오셔서인지 줄어든 폐가 늘어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술의 경과는 매우 좋지만, 이대로 방치해두면 다시 가슴에 피와 고름이 차게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빈 공간에 다시 농이 차지 않도록 관을 연결해 배액 시키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2차 수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흉곽성형 수술까지 마무리 해야 이후에도 농흉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의사로서 저의 당연한 역할입니다. 제가 신승오 님께 드린 것이라곤 저의 작은 마음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우리 한양대학교병원이 신승오님께 보내드린 이 사랑을 늘 잊지 마시고, 힘을 내셔서 앞으로는 스스로 더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2차수술도 잘해냅시다! 감사합니다. 정원상 드림 고마운 당신에게 |한양대학교의료원 앞으로 도착한 감사의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201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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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희망을 재건하는 사람, 김연환 한양대학교병원 성형외과 교수
다쳐서 생긴 상처나 사고로 결손된 신체 복원, 선천적 기형을 가진 환자들의 신체 모양과 기능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재건성형’ 분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신체 부위를 담당해야 하는 광범위하고 실력을 요하는 미세수술 분야다. 몸에 퍼져있는 미세한 혈관들을 찾아 생명의 끈을 잇고, 손상된 부위에 피부를 이식해 신체를 재건(Reconstruction)하는 일에 몰두하는 김연환 성형외과 교수는 자신의 손길로 삶의 희망을 얻는 환자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며, 재건성형 분야가 자신의 천직이라 확신한다. 글. 이지연 사진. 정준택 ‘미세’한 세계를 향한 ‘최고’라는 꿈 파란 수술복을 입고 마스크를 낀 김연환 교수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4시간에 걸친 하지재건술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수술이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1시간가량이 더 걸려 지칠법한데도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42.195km의 풀코스를 완주하고 결승점에 돌아온 마라토너 처럼 숨은 가쁘지만, 행복함이 만연한 모습이었다. “수술이 아주 잘 됐어요. 자가조직을 이식한 재건술이었는데요. 성형외과 분야에서 가장 큰 수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조직을 받아서 이식하지 않고, 환자의 신체 중 일부를 떼어 다리 쪽에 이식한 수술로 피판술 또는 미세 현미경 수술이라고 합니다.” 이날 진행된 수술은 어렸을 때 사고로 무릎 아래쪽이 절단된 환자가 의족을 착용하기 수월하도록, 옆구리의 살을 떼어 튀어나온 뼈를 감싸는 수술이었다. 김연환 교수는 이식을 위해 떼어낸 신체 부위의 미세혈관을 다리 쪽의 혈관과 연결해야 하기에, 수술용 현미경을 사용하고 초고도의 집중 상태가 필요했음을 덧붙였다. “미세수술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그 중 동맥에서 나와 피부로 올라오는 아주 가는 미세혈관을 이용한 술기를 천공지라고 해요. 천공지는 환자의 근육이나 신경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도 이식이 가능하고, 덧댄 피부 자체가 얇아 모양이 예쁘고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각광받고 있는 재건수술이에요.” 김연환 교수는 천공지 피판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클래스라며, 그 중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성형외과는 옆구리 쪽인 흉배 천공지를 이용한 미세수술의 리딩그룹에 속함을 강조했다. 그의 말마따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성형외과에는 김연환 교수의 스승이자, 미세수술 분야의 권위자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복벽을 이용한 유방재건술의 권위자인 안희창 교수를 비롯해 흉배 천공지를 이용한 두경부 재건에 능통한 김정태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스승들의 수술을 보며 재건성형분야 전문의를 꿈꿔온 김연환 교수의 목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하지재건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다. 훗날 자신의 입으로 ‘꿈이 실현되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연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의사 정신’에 매료된 공학도 “아주 어렸을 때는 공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로봇과 관련된 분야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매력을 느껴 실제로 공대에 진학했어요.” 김연환 교수가 공대 1학년을 마치고 진로를 바꾸기 위해 다시금 전쟁터 같은 입시 현장으로 돌아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손을 다쳐 봉합술을 받은 아버지가 정형외과 의사를 만나 치료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 봉사와 사랑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정신’을 발견했고, 곧 그것에 매료됐다. 남들이 늦은 때라고 만류했지만, 김연환 교수는 의대진학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의대는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어서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죠. 멀쩡히 잘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뒀으니, 합격에 대한 부담감도 컸고요. 운이 좋아서, 운명처럼 의사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아버지의 일을 겪으며 정형외과 전공, 그중에서도 손(Hands) 파트를 전공하려 했다는 그는 인턴시절, 위에 언급했던 두 스승의 수술 장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 관심 가졌던 공학과 의술의 만남이 이런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없는 조직을 만들어주고 손상된 신체 부위를 재건하는 의사가 된다면 낙심했던 환자의 삶에 편리함과 희망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의사의 그림에 성형외과가 더 맞는 것 같아서 노선을 바꿨죠.” 하지만 아들이 미용성형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그의 아버지는 오래도록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해가 풀린 것은 김연환 교수의 레지던트 시절이다. 갈아입을 속옷과 셔츠를 들고 병원을 찾았던 그의 아버지가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의 얼굴을 2시간 가까이 꿰매고 있다는 아들의 상황을 전해 듣고 나서였다. “아직도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제가 진행하는 다리 쪽의 큰 재건수 술들이 정형외과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뼈가 아닌 부분, 예를 들어 우리 몸에 있는 조직이 결손 됐다거나, 피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성형외과에서 치료와 수술을 진행하죠. 성형외과에서 미세 재건수술 한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도 있어서 종종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실력을 쌓는 노력은 ‘환자’를 위한 것 김연환 교수의 하루는 꽉 짜여있다. 수술과 외래진료가 없는 날에는 강의와 연구 스케줄로 빡빡하다. 이런 그의 일과가 말해주듯 김 교수는 지금까지 진행했던 미세수술을 기반으로 60여편의 논문을 작성해 외국저널에 기고하는 근면·성실함이 돋보이는 사람이다. 2011년엔 ‘2,398례의 표재성 지방흡입술 후 발생한 합병증의 후양적분석’,‘혈관병변 환자에 있어 천공지 피판을 이용한 하지재건’ 등의 연구 논문을 통해 미국의 인명연구소 ABI와 영국의 국제인명센터 IBC에 동시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또한 대한성형외과학회, 대한미용성형외과 학회 등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세계 최고의 하지재건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때때로 이 정도면,열심히 살고 있구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다가도 더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동료 선생님들을 볼 때면 자극을 받아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인성과 실력이 갖춰진 의사인데요. 실력이 없는 의사는 최고가 될 수 없을뿐더러, 좋은 의사도 될수 없죠. 저 역시도 실력있는 좋은 재건 의사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약한 사람들, 다쳐서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되새긴다는 김연환 교수. 또 하나, 언제나 ‘내 동생, 내 어머니, 내 아버지’를 수술한다고 생각한단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정확하고 빠른 수술로 시간을 단축하려는 그만의 노력이자, 환자가 더욱 빨리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의 밑바탕이 된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고 친절하지만, 후배들에게는 엄격하고 가장 혼을 많이 내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가장 우선에 두는 그의 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성형외과에는 미용성형만이 아니라 성형외과의 가장 큰 분야이기도 한 재건성형 분야가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재건수술을 망설였던 환자가 “수술받기 잘했다”고 말할 때 성형외과 의사로서 가장 뿌듯하다는 김연환 교수. 그가 누군가의 삶에 한 줄기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재건성형외과의’를 천직이라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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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통해 봉사를 실천하는 한양대학교병원 스킨스쿠버 동호회
바다 속에서 만난 바다 위 세상 세상은 막연히 아이디어로만 머무르기 쉬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용감한 소수의 실천가들에 의해 변화한다. 스킨스쿠버가 좋아 하나로 뭉쳤다가 이제는 의료봉사라는 대의를 내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작은 실천의 한 걸음을 내디디려 하는 한양대학교병원 시설팀도 그런 소수의 실천가에 속한다. 개울이 강이 되고 강이 다시 바다가 되듯, 이들이 뿌린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임지영/ 사진 정준택, 김영진, 조영범 논스톱 스킨스쿠버 동호회 ‘딘과 함께 속도위반’ 한양대학교 서울병원에는 핫한 외모만큼이나 뜨거운 심장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스킨스쿠버 팀이 있다. 블로그와 까페로도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딘과 함께 속도위반’이 그 주인공이다. 코믹북의 제목같은 이 동호회 이름은 스킨스쿠버팀의 주축인 한양대병원 시설팀의 김영진 씨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멋진 남자주인공인 ‘딘’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멤버는 스무명쯤 되고요. 한양대 병원 시설과 직원들 상당수가 가입했어요. 여자 회원이 가입하면 남자 회원들은 자동으로 늘어날 텐데, 얼른 여회원이 가입했으면 좋겠어요. 스킨스쿠버나 해양스포츠 좋아하시는 여자분들, 언제든 격하게 환영합니다!” ‘속도위반’팀 결성 초기, 김영진 씨 외에 병원 시설팀 근무 5~7년 정도의 경력을 자랑하는 멤버들 가운데에는 아예 수영을 못하거나 물을 무서워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다 경험인 것 같아요. 경험 전에는 두렵던 것이 경험 후에는 조금씩 용기가 생기고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경험이 쌓이면 도전욕도 커지죠.” 부산 사나이라 어릴 적부터 바다에 익숙한 그는 7년 전 처음 스킨스쿠버라는 신세계를 접하고 그만 푹 빠져버렸다. 당시에는 중급 다이버 수준이었는데 하다 보니 강사 자격증에 욕심이 생겼다. “강사가 되기 전에 서울, 동해 등지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해병대 출신인 강사분이 너무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거예요. 스쿠버다이빙보다 강사가 무서워서 우는 여자 멤버들을 보면서 난 강사가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결심했어요, 하하! 농담이구요, 편안하게 가르쳐야겠다, 두려움은 절반으로 줄이고 도전욕은 두 배로 키워주는 강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 마음먹고 석 달간 집중 훈련을 받고 기어이 자격증을 따냈다. 이후, 주말은 물론 휴가가 생기면 고스란히 스쿠버다이빙에 헌납했다. 대체불가, 비교불가한 스킨스쿠버의 묘미 이제 갓 스킨스쿠버의 세계에 입문한 사람들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두 명이 한 조를 이루는 ‘짝다이빙’을 하게 된다. 비슷한 레벨로 짝을 짓는데 보통 15미터에서 30미터쯤 되는 수심에서 다이빙을 하게 된다. 실력이 향상되면 오픈워터 다이빙과 어드밴스드 다이빙 단계로 넘어간다. 김영진 씨는 어드밴스 단계쯤 되면 다이빙의 참맛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어드밴스에서 조금 더 나아간 다양한 스페셜티 중에 고난이도에 속하는 동굴 다이빙이 가능해져요. 동굴의 경우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핀을 마음대로 차기도 쉽지 않고 핀을 잘못 찼을 때 부유물도 많이 생겨서 아주 정교한 자세를 취해야만 탐험이 가능해지거든요. 이 단계가 되면 해저세계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되죠.” 일찍이 수영을 해 물에 익숙한 시설팀의 류영헌 씨나 물이 낯선 권혁진 씨도 스킨스쿠버는 수영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스킨스쿠버쪽이 도전과제가 훨씬 많아서 재미있어요. 물속 배경도 수영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스펙터클하고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드밴스와 스페셜티 단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향하게 되는 관문은 ‘마스터 스쿠버다이버’ 단계다. 마스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혼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펀 다이빙을 뛰어넘어 구조를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스킬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레크레이션의 마지막 라이센스다. 실력에 비례하여 점점 커지는 도전욕을 채우고자 미지의 세계를 찾아 다녔다. 필리핀의 다양한 섬들은 이들에게 이미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고 팔라우, 제주도, 사이판, 괌 등도 상당히 친숙하다. 팔라우 해저탐험 중 바다가 호수로 바뀐 해파리 호수에서 투명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젤리피쉬 떼를 만나는 몽환적인 경험도 했다. 하나하나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진귀한 체험이다.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김영진 씨는 스킨스쿠버의 묘미에 눈뜬 멤버들을 잘 가르쳐 다양한 세상을 체험하며 신나게 즐기는 펀다이버로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프로가 되고 나면 시야가 달라져요. 멤버들이 레벨업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예요. 저만 본 믿기지 않을 만큼 근사한 해저세상이 많거든요? 보고도 못 믿는 그 판타지 세상을 하루빨리 우리 멤버들과 자유롭게 유영하는 게 소원이에요.” 봉사 겸한 취미가 되면 훨씬 뜻깊을 터, 받은 만큼 바다에 베풀고파 ‘속도위반’팀에게는 멤버들의 레벨업 외에 실현을 하루라도 앞당기고픈 또 한 가지의 소원이 있다. 스킨스쿠버를 취미 수준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는 것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가는 다이빙 포인트의 배경이 작고 허름한 어촌마을인 경우가 많아요. 처음엔 마을의 열악한 환경에 충격을 받았죠. 필리핀 모알보알에서 현지인 어부에게 활어참치 한 마리를 산적이 있는데, 그때 그 어부가 엄청나게 큰 돈을 받은 것처럼 놀라면서 감사 인사를 하더라고요. 2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을 뿐인데, 그분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금액이었니 그럴 수밖에요.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마냥 홀가분한 마음으로 취미를 즐길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김영진 씨는 얼마 전부터 이 마을들에 취미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봉사’였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재능기부 형태로 무료로 가르쳐주고 멤버들이 그 대가로 현지에서 봉사를 한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나눔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분야의 의료진들이 참여해준다면 금상첨화일 거라는 게 멤버들의 생각이자 바램이다. “단순한 취미로 끝내고 싶진 않아요. 봉사활동을 겸한 취미라면 훨씬 의미 있을 것 같아 추진 중이에요. 인원이 늘어나면 분기마다 섬이나 오지를 탐방하며 주민들과 교류를 쌓고 우리 한양대학교병원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병원이 성장하는 것은 제가 성장하는 거니까요. 젊은 피가 가진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정체된 마을에 활기를 주고 싶어요.” 젊은 피라 역시 신선하고 역동적이다. 이들의 여름 달력은 벌써부터 빼곡한 스케줄로 채워져 있다. 7월에는 속초 어드밴스드 중급파티가, 8월에는 부산 외섬, 거제도 다이빙이, 9월에는 사이판 다이빙이 예정되어 있다. 어림잡아 꼽은 공식 스케줄만 이 정도고 비공식적인 스케줄까지 합치면 거의 매주 일정이 있을 정도다. “스킨스쿠버의 장점이요? 꼽을 수가 없을 정도예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죠. 물론 동료애도 새롭게 다질 수 있고요. 하나가 아닌 우리라는 것, 그 우리가 모여 혼자서는 도저히 하지 못할 일을 해낼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은 스킨스쿠버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거예요.” ‘속도위반’이라 이름 붙였지만, 이들은 오히려 누구보다 질서정연하게 제 속도를 찾아가고 있다. 바다로부터 받은 만큼 바다에 되돌려주려는, 더 없이 멋지고 근사한 방식으로 말이다. 역사가 오래된 미국의 다이브 단체인 NAUI, 테크니컬 다이빙의 대표 단체 IANTD, 산소와 질소량를 조절하여 무감압 한계를 늘리는 나이트 록스(Nitrox) 강사, 응급처치 및 CPR 강사 다이빙 후 일어날 수 있는 감압병, 질병 등에 대비하여 100%산소를 공급 및 대처 가능한 강사 등 다양한 단체의 강사로 소속되어 있으며, 사이드 마운트, 더블탱크다이빙, 트라이믹스 다이빙도 가능하다. 다이내믹 한양 |한양대학교의료원 임직원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전합니다.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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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의료진, 다른 병원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최동호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간이식 수술 받은 이요섭 님의 편지 교통사고로 다친 왼쪽 다리의 인공관절 수명이 다해 재수술을 받고자 한양대학교병원을 찾았던 이요섭 님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수술 전 검사를 통해 간암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눈앞이 깜깜해진 그때 큰딸이 아빠에게 자신의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정리. 곽한나 사진. 이정민 건강한 일상을 찾게 해주신 최동호 교수님께 저는 택시운전사입니다. 2006년 오토바이와 교통사고가 나서 119구급차로 한양대학교병원에 실려 온 것이 첫 인연이었습니다. 왼쪽 다리의 고관절과 무릎, 발목을 다쳤는데 고관절을 인공관절로 교체하게 되었죠. 평소 술과 담배를 무척 즐겼습니다. 간수치가 높아 간경화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인공관절에 수명이 다해서인지, 술을 먹고 무리를 해서인지 왼쪽 다리가 심하게 아팠습니다. 재수술을 받아야겠다 싶어 한양대학교병원에 왔다가 간수치가 높다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죠. 다시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아뿔사, 간암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딸이 두 명,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처음에는 아들이 간을 이식하겠다고 나섰죠. 하지만 검사 결과 아들과는 이식 조건이 맞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큰 딸과 조건이 맞았어요.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이제껏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도 고마운데 저 때문에 자식의 몸에 칼을 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어요. 그때 한양대학교병원 최동호 교수님을 비롯한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한양대학교병원의 간 이식 첫 성공사례의 주인공이 되어서 기쁩니다. 환자로서 의사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 그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최동호 교수님은 따로 묻지 않아도 언제나 상세한 설명을 잘해주신 것이 인상 깊습니다. 수술 후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제 상태를 챙기고 확인해주셨죠. 코디네이터 선생님도 환자 입장에서 부담이 없도록 최대한 배려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다른 병원을 수시로 다녀봤지만 최동호 교수님과 간호사 분들, 코디네이터 선생님까지 친절한 정도가 차원이 달라요. 어떤 병원도 한양대학교병원을 따라가지 못하더라고요. 제 수술 과정을 돌보아 주시고 진행해주신 모든 분들께 이 지면을 통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마움을 담아 이요섭 드림 이요섭 님에게 이요섭 님은 간 기능이 모두 정상이고 회복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거의 정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좋아지셨죠. 앞으로 3개월 후면 직장 복귀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왼쪽 다리 수술을 위해 검사를 받다가 간암이 발견된 것은 이요섭 님께 무척 다행인 일입니다. 이요섭 님께 간 이식을 해 준 큰딸이 참 효녀였습니다. 수술을 위해 5Kg을 감량할 정도로 온 정성을 다하셨죠. 덕분에 아버지와 딸 모두 건강하게 회복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간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추적관찰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도 잘하고 계시지만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한양대학교병원도 드디어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무수혈 수술을 통한 성과라 더욱 큰 기쁨을 전합니다. 최동호 드림 고마운 당신에게 |한양대학교의료원 앞으로 도착한 감사의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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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만 보고 달린 진격의 사나이 - 하태경 교수
하태경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하태경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진격의 사나이’다. 환자도 보고 학생들도 가르치지만 최고의 연구 실적을 자랑하기도 한다. 연구 분야가 다양하고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그가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드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는 사실이다. 20년 가까이 의사로 일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시도한 이 남자의 저력을 지금 만나보자. 글. 임지영 사진. 정준택 한번 꽂히면 성에 찰 때까지 몰두하는 ‘뚝심’ 연구실에 앉은 그는 사뭇 불편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목이 잘 돌아가질 않았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는 옛 속담 그대로였다. 뻣뻣하게 굳은 자라목을 하고도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눈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먼저 시작한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도저히 다른 일에 손을 대지 않을 타입 같아 보였다. “직업병이에요. 매일 컴퓨터나 논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요. 연구 성과를 고질적인 목 디스크와 맞교환한 셈이죠.” 하 교수는 주변에도 공부를 많이 하는 의사로 소문 나 있다. 한번 ‘꽂히면’ 성에 찰 때까지 몰두하는 까닭이다. 비교적 짧은 경력에 남다른 연구 실적을 쌓은 데에는 마음먹으면 무조건 목표를 향해 진격하는 그의 뚝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컴퓨터 스크린에는 화면을 가득 채운 알 수 없는 텍스트로도 모자라 포스트잇 메모가 빼곡히 붙어 있다. “새로운 기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기억력이라는 게 한계가 있는 거니까 체크해야 할 사항들을 그때그때 이렇게 메모해 붙여두면 나중에 도움이 돼요. 이걸 통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중요한 사항을 잊어버릴 염려도 없죠.” 이만한 천직이 또 있을까? 뻣뻣한 목은 좀 불편해도 새로운 기기 연구만큼은 참 재미있다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연구원이든 의사든 하얀 가운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학창 시절 유난히 수학을 잘했던 그의 꿈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되는 것이었다. 사진만으로 병을 진단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하지만 인턴 실습을 하면서 꿈은 바뀌었다. “사진만 판독해서는 진단, 치료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어요. 또 응급실을 찾을 정도로 시급을 다투는 환자들에게는 외과가 가장 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고요.” 약만 처방하는 내과보다 좀 더 입체적인 역할을 원했던 그는 결국 외과행을 택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와 친했던 동기들도 하나같이 외과를 택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역사상 최다 외과 전문의를 많이 배출한 연차였어요. 보통 외과라 하면 험해서 꺼리는데 그 중에 여학생도 있었어요. 지금도 만나면 그때를 떠올리며 신기해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전형적이면서 전형적이지 않은 의사 외과 전공 ‘6총사’ 중 하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은 전문의로 개업을 하면서 모두 모교를 떠났다. 홀로 남은 이유에 대해 하 교수는 ‘딱히 개업 계획이 없어서’라고 담백하게 말한다. 그럴 듯한 미사여구나 형용을 고를 줄 모르는 그는 군더더기가 없어 실수나 오차도 적은 사람이다. 이런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딱딱하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목석’이라는 오랜 별명은 알고 보면 그가 대학교 응원 동아리에 몸 담았던 시절 얻은 것이다. 너무나 전형적인 동시에, 전형을 깨는 무언가 비전형적인 ‘한 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목 디스크는 예전에 있던 대형 병원에서 임상연구를 하면서 얻었어요. 데이터 수집을 위해 하루 꼬박 12시간 컴퓨터 스크린만 노려본 결과죠, 하하. 거짓말 같지만 그땐 매일 새벽 여섯 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컴퓨터만 봤거든요.” 하지만 ‘소아외과’ 과목이 진료과목에 추가되면서 그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다. 수술과 직계된 과목이라 그런지 외과 공부는 파면 팔수록 깊어지는 우물과도 같았다. 이왕 의사가 된 거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나마 되고 싶었을 뿐이라는 그의 남다른 열정은 2006년 ‘대한위암학회 우수포스터상’, 2007년 ‘대한위암학회 우수포스터상’, 2010년 ‘대한암학회 로슈학술상’ 등으로 이미 인정받은 바 있다. 최소침습수술로 ‘스몰 인시전 그레이트 서전’시대 열다 하 교수는 복강경과 다빈치 로봇을 이용한 최소침습수술로 위암 치료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빅 인시전(big incision) 그레이트 서전(great surgeon)이라 해서 수술 부위가 크면 훌륭한 외과의라 했어요. 지금은 정반대로 수술 부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유능한 의사예요. 그만큼 정교한 수술이 관건이 된 거죠.” 다빈치 로봇은 손이 닿지 않는 부위까지 침투해 필요한 시술을 해주는 로봇이다. 하 교수는 이를 이용한 위암수술 및 인환세포 위암(signet ring cell gastric cancer)의 치료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및 논문발표 등 그간의 독창적인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의 하나인 미국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사에서 발행하는 2011 년도 판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1년간의 아일랜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해인 2014년에는 조기위암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위암을 절제하면서 복강 내 내장지방을 같이 제거하면 심혈관 질환 발생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다시 한번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오랫동안 공부할 게 너무 많아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어요. 소아외과 과목이 추가되면서 아이들에 관한 공부를 해야 했는데 그러다 문득 ‘아차. 나도 아이들의 아빠였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삼 아빠는 공부에만 정신이 팔려있는데 그 와중에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아내에게도 미안했고요.” 그는 환자를 돌보는 마음으로 자신과 가족을 돌보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절주, 금연을 실천했다. 그리고 가족과 대화하는시간을 늘렸다. 환자들의 불안과 고통도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단절과 고립을 통해 더 커지리란 생각에 환자들과의 대화 시간도 자주 갖는 편이다. 하 교수에게는 언제부터인지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환자 상담 중에도 환자가 하는 말이라면 일단 메모부터 하고 본다. 흘려 듣기 쉬운 사소한 내용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그에게 환자들이 감동하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건강한 삶을 위하여 예전에는 역할이 입체적일 것 같아 외과의란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면 지금은 환자들의 삶의 질을 바꾸어놓기 때문에 ‘사명’을 느낀다. “630g밖에 안 되는 태어난 지 24주쯤 된 미숙아를 수술한 적이 있어요. ‘괴사성 장염’이었죠.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뻔한 아이를 살려 놓고는 제가 울었어요. 그 아이가 지금껏 수술한 최연소 환자였을 겁니다. 그런가 하면 복막염으로 고통 받던 93세 할머님을 수술한 적도 있어요. 덕분에 더 오래 살게 되셨다며 고마워하셨죠. 나이가 따로 없어요. 건강한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겁니다.” 하 교수는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환자가 “선생님, 고맙습니다” 할 때 더할 나위 없이 큰 감사와 보람을 느낀다. 그의 손길로 건강을 되찾은 환자가 감사의 말 한마디를 건네는 그 순간은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예전에는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수술들이 의료기술의 발달, 혁신으로 지금은 상당 부분 가능한 수술이 되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 그 특별한 연금술적 매력이 하 교수로 하여금 불편한 목을 쑥 빼놓고 잠을 줄여 공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는 소아외과 분야의 후배 양성과 더불어 위암, 고도비만 등 상부위장관 수술을 전문화시켜 그 분야로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향해 오늘도 성큼성큼 나아가는 사나이. 누가 뭐래도 그는 앞으로도 한 일보다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은 ‘진격의 사나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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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삶, 나누며 살고싶어요”, 이창화 교수
신장이식 수술로 건강 되찾은 김재수 님의 편지 언뜻 보기에도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의 김재수 님은 지난해 4월 65세의 나이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15여 년 이상 신장 질환으로 고생하며 혈액 투석까지 받은 그에게 이식수술은 ‘천운’과도 같았다. 신장내과 이창화 교수는 천운을 잡게 해 준 평생의 은인이다. 정리. 곽한나 사진. 정준택 늘 웃음으로 대해 주시는 이창화 교수님께 저에게 신장을 이식해 주신 분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40대의 남성이에요. 과로로 쓰러진 후 뇌사 상태였던 공여자는 무려 여덟 분의 생명을 살리고 돌아가셨죠. 제가 그 분의 신장을 이식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습니다. 이식 수술을 앞두고 저에게는 3가지 위험요소가 있었어요. 첫째는 나이가 많다는 것, 둘째는 심혈관에 문제가 있어 심장에 스텐트가 2개나 들어가 있다는 것, 셋째는 아스피린제제 등 약 복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새생명과도 같은 이식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무엇보다 오랜 기간 한결같이 제 질환을 돌봐주신 한양대학교병원 신장내과 이창화 교수님께서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셨죠. 저는 이미 마흔여덟 살 때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도 있고, 당뇨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그간 아주 많은 병원을 다녔어요. 하지만 이창화 교수님처럼 친절하게 잘해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복막 투석을 할 당시, 답답한 마음에 국내에서 유명하다는 명의를 찾아간 적이 있었죠. 죄송한 마음에 미리 말씀 드렸더니 이창화 교수님께서는 “전혀 개의치 마시고 다녀오세요. 만약 불편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오십시오.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명의라고 소문난 그분은 매우 불친절했고 제대로 된 진료를 하지 않았어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창화 교수님을 다시 찾았죠. 교수님께서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늘 두 손으로 진료 기록을 주고 받고, 낮은 자세로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교수님을 볼 때마다 감사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20년 이상 인천의 한 보육원을 후원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을 보듬고 돕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깊고 큰 고마움으로 김재수 드림 이재수 님에게 이식 수술 후, 한 달에 한 번 외래진료를 오시는 김재수 님을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평소에 몸 관리를 잘 하시고 생활 습관도 좋은 편이라 일반인과 다름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기 때문이죠. 환자 본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김재수 님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도움이 매우 클 것입니다. 과거 당뇨와 심혈관 질환, 그리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병력이 있어서 오랜 기간 힘든 상황이었을 텐데요. 가족의 헌신적인 간호와 노력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의사로서 김재수 님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식 수술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열이 나거나 몸에 변화가 올 때에는 “이러다 괜찮겠지” 하지 마시고, 병원에 꼭 오시기 바랍니다. 이창화 드림 고마운 당신에게 |한양대학교의료원 앞으로 도착한 감사의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2015-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