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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우정 함께하는 기쁨으로 채우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7기 동기회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사랑의 실천’이었다. 학창시절 스승과 선배들에게 배운 그 뜻을 실천하고자 한자리에 모인 동기들이 있다. 졸업 30년, “이제는 우리가 나설 차례.”라고 말하며 배움을 실천하는 그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7기 동기회를 만나보았다. 안희창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성형외과)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7기 동기회장. [오른쪽 상단 첫번째] 36년 우정, 아름다운 시절 “우리가 벌써 졸업한 지 30주년이 되었어요. 모두 74학번이니까 처음 만난 건 36년이 되었네요. 졸업을 하고 그 만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주 모이는 편입니다. 의사들은 단합하기가 어려운데 다들 각자 일을 하는데도 이렇게 만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여서 뭉칠 때마다 기쁘지만 특히 자녀들의 이야기를 공유할 때는 감회가 새롭다고 느낀다. “스무 살부터 젊음을 함께 했던 친구들인데 시간이 흘러 그때 우리 또래의 자식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신기하고 특별해요. 세월이 흘러도 늘 이렇게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동기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방 쪽으로 귀 기울인다. 2번째 기부, 발걸음의 시작 한양대학교병원 성형외과 안희창 교수가 동기 회장(사진윗줄 맨 오른쪽) 으로 있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7기 동기회는 졸업 30주년을 맞이해 한양대학교의료원 발전기금으로 3천만 원을 기부했다. 고마운 본보기가 된다며 취재를 하겠다 하니 모교를 위해 당연한 일을 했다면서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저나 동기들이 학창시절부터 우리가 배웠던 사랑의 실천에 대한 마음은 늘 있었어요. 선배들로부터 받았던 혜택들과 그로 인해 우리가 누렸던 편리한 환경들에 대한 감사함을 나눠야겠다고 생각만 해왔던 거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왔습니다.” 젊었을 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키워 나가며 발전을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나눔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동기들은 때가 되었다고 깨달았다. 발전의 과정을 지나 성숙의 시간으로 접어든 이때가 모교로부터 받은 사람과 감사에 보답해야 할 시간이라고. 우리가 모여 작은 시작을 행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졸업 20주년에도 동기들의 마음을 모아 교실발전기금을 기부했다고 한다. 다시 십 년이 지나 30년 후에 다시 마음을 모아 준 동기들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말하는 안 교수. “그때도 동기회장이었는데 30주년인 올 해도 어찌하다 동기회장이네요. 제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통해서 한 일이라 더욱 기쁘네요. 우리들 마음만큼 큰 돈은 아니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우리의 시작이니까 그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어 이제 10년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기부금을 모을 계획이라며 앞으로 더욱더 관심을 갖고 싶다며 모교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기부금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후배들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싶다는 그에겐 몇 가지 계획이 있다. 선・후배 간 멘토링을 주도하여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야유회를 다녀오면서 선배 의사로서 삶에 대해서, 인생 고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고 싶다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따뜻하다. 더 키워나갈 모교 사랑 “이 돈이 한양대학교의료원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의료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음에 의의를 둡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이 사랑을 좀 더 키워나가고 싶네요.” 안희창 교수와 동문들이 재학 당시 한양대학교병원의 위상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국내 최고의 시설과 교수진으로 타의 부러움을 사왔다. 그러나 지금은 재벌병원들의 탄생으로 조금 위축되었지만 이는 우리 동문들의 힘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저마다 한양대학교병원의 의료서비스와 시설에 관한 걱정을 하면서 모교에 대한 관심과 일침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동문 한 명 한 명의 정성과 사랑을 모아 시설을 확충하여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7기 동기회가 그 발걸음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앞으로 한양대학교의료원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청춘이란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한다. 함께 있어 늘 청춘을 사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7기 동기회의 동행이 아름답다. 글/손미경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아름다운 실천] 한양대학교의료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나눔 실천’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1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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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본보기 아름다운 남김 이광수 명예교수
가장 아름답고 조촐한 퇴임식 2010년 8월 2일은 이광수 교수가 마지막 환자를 보내고 진료실을 나선 날이다. 의사로서의 모든 열정을 쏟은 곳, 그 깊은 의미가 새겨진 곳에서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기억에서는 심장이 따뜻하게 일렁이고, 또 어떤 기억에서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쉬움이 슬쩍 고개를 든다. 대부분의 경우 말은 그래도 막상 상황과 부딪치면 어쩔 수 없이 생각의 전환을 하지만, 이광수 교수는 마음에 품은 소신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멋진 퇴임식 제안을 해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모두들 이해해 줘 고마웠다. 또 기존에 보지 못했던 퇴임식에 참석한 이들은 걱정과 달리 그 조촐함 속에서 배어 나오는 특별한 분위기를 특별하게 여겼다. 간소한 음식, 수십 년 간 한 길을 걸어오며 맺었던 가까운 인연들이 전부인 가장 소박하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퇴임식으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소신을 갖고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소신대로 일을 마무리하기란 어려운 법.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 교수의 마지막 날은 누구에게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후배들을 위한 그리고 숨기고 싶었던 기부 이광수 교수는 정년퇴임을 하면서 교실발전기금으로 5천 3백만 원을 기부했는데, 내심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것을 세상에 알리겠다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아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었다. 그럼에도 허락한 것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한양대학교병원 관계자들의 청을 끝까지 내치기가 어려워서기도 했고, 또 알려져서 더 큰일을 이루는 도화선이 된다면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망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또 그 뒤를 이어 누군가 더 크고 좋은 생각을 해 준다면 큰 보탬이 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광수 교수의 퇴임식이 아름다웠던 것은 이처럼 아름다운 기부가 있어서였기도 하다. 말은 행위의 담보 기본과 정확성을 중요시 여기는 이광수 교수는 ‘말은 행위의 담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변하지 않는 소신이며, 독일 연수 이후 계속해서 일관성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그 소신은 두터운 신뢰와 퇴임식을 청렴하게 치를 수 있게 한 바탕이 되었으며, 퇴직 후에도 큰 뒷심이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말이 곧 삶이 되는 이광수 교수는 지금은 비워진 시간이며, 그 비워진 시간 속에 무엇을 담을까 세심하게 고민 중이다. 그리고 자신과 세상이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그 무엇을 위해 꿈을 꾸는 요즘이 행복하다. 글/손미경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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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처럼 환한, 햇살처럼 따스한 방송인 김혜영
수요일 아침 9시 30분. 주부들의 아침 시간을 꽉 잡고 있는 KBS TV 생방송 프로그램 아침마당을 막 마치고 나오는 방송인 김혜영 씨의 환한 웃음이 싱그럽다. 작은 실수도 방송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출연진의 노련함이 필수요소인 생방송을 마친 이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그 웃음이 특유의 생명력으로 이어지지 않나 생각해보았다. 김혜영 표 긴 생명력 김혜영 씨는 국내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24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방송을 한다는 것은 평범한 성실성으로는 불가능한 일. 그는 몸이 아플 때도 방송을 빠뜨린 적이 없고 심지어 결혼식 당일에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방송을 진행한 후 예식장으로 달려갔으며 신혼여행지인 제주에서도 현지의 라디오 방송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했다. MBC에서는 20년 이상 싱글벙글쇼 진행자로 활약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골든마우스상’을 수여했는데 여성으로서는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세상이 그에게 박수를 칠 때 그는 방송기자인 남편과 공동 진행자인 강석 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공을 돌리기도 했다. 남편은 일하는 아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늘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포기하지 마라’ 며 힘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육아와 가사도 분담해서 힘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방송 호흡이 척척 맞는 강석씨는 동료로서 좋은 자극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한다. 긴 생명력은 일에 멈추지 않고 ‘관계’ 로 나아간다. 단짝이 되어 줄곧 라디오 방송을 함께 해온 강석 씨를 비롯한 방송국 사람들이 그렇고 벗, 선후배들이 그렇다. 특히 가수 현숙 씨와의 우정은 각별한데 두 사람은 17년째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금슬 좋은 부부가 닮듯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닮는다. 김혜영 씨와 가수 현숙 씨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늘 햇살처럼 따뜻한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 그렇고 옷이며 발 치수가 같은 두 사람은 쌍둥이 자매처럼 옷과 신발을 바꿔 입기도 하고 하나의 옷과 신발을 번갈아 가며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현숙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연을 가려고 하는데 언젠가 동생 김혜영 씨에게 선물했던 블라우스가 떠올랐고 마침 김혜영 씨가 입고 왔다고 하자 옷을 맞바꿔 입기로 한 것이다. 늘 상 있는 일이라며 김혜영 씨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왔다. 참 재미있게 사는 자매다 싶다. 아픔을 통해서 기쁨을 알듯이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명도와 채도를 한 껏 올려놓는 김혜영 씨는 다양한 분야의 홍보대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부모님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과 11살까지 살았던 원주시와의 인연으로 하동군과 원주시의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밝고 알뜰한 이미지로 물가안정홍보대사에 임명되었다. 빛나는 삶에 아픔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악성신장염이었어요. 가는 병원마다 암담한 얘기를 들어서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애들 생각에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런 제 손을 잡고 현숙 언니가 한양대학교병원으로 이끌었지요. 한양대학교병원은 현숙 언니가 부모님을 마지막까지 모신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정신적 치료를 받았어요. 당시 병원장이셨던 곽진영 선생님께서 제 손을 잡고 하신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죠. 선생님은 ‘김혜영 씨, 내가 있어요. 이 분야에서 ‘국내 톱 5 의사’ 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예요.’라고 하시면서 강한 믿음과 희망을 주셨어요. 마음에 힘을 얻으니 몸도 좋아지더군요.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진리, 절실하게 느꼈어요.” 햇살이 아무리 환하게 비쳐도 그림자는 있게 마련, 그는 그림자를 보기보다는 햇살을 보기로 했다. 그는 신장이 건강을 위한 특별한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말고 스트레스 받고 살지 않기 위해 경보기 하나 마련했다고 생각한단다. 김혜영 씨의 꿈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고 한다. 잘 먹는다는 것은 건강을 뜻하고, 잘 사는 것은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고 사는 것이라며 명쾌하게 설명한다. ‘평범한 진리’ 를 지키는 삶의 소중함을 말하며 그는 다시금 라일락향기 은은한 환한 웃음을 지었다. ‘소녀같이 순수한 누나’의 팬을 자처하며 인터뷰하는 데 힘을 실어주러 왔다는 아침마당의 이헌희 PD는 수요일 코너의 고정패널인 누나가 참 많은 힘이 된다고 했다. 그는 ‘누님’이 아닌 ‘누나’라고 했다. “탄탄한 방송경력으로 프로그램의 맛깔 난 양념역할을 해주고 계시죠. 제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누나입니다. 따뜻한 인간 난로 같은 누나에겐 할머니가 되어도 누님이란 말보단 누나란 말이 더 어울릴 거예요. 소녀가 그대로 누나가 되었다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일 거예요.” 글/박현숙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아름다운 이야기] 한결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치유해 온 한양대학교의료원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201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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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화백, 그림으로 전하는 사랑 메시지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 온 서양화가 이한우 화백. 그가 ‘아름다운 우리 강산’연작시리즈 중 한 점을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에 기증했다. 가족처럼 편안하고 친절하게 치료를 해준 의료진에게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서다. 그의 그림은 한양대학교병원을 찾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에 행복 호르몬을 돌게 한다.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에 그림을 기증하다 좋은 그림은 눈만 즐겁게 하는 게 아니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을 만들어내 스트레스, 고민, 갈등을 없애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병원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도 그림만 한 게 없다. 원로화가 이한우(81) 화백이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에 그림을 기증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화백은 2년 전 골관절염으로 류마티스내과 배상철 교수의 진료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정성껏 치료해 준 의사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자신의 작품 ‘아름다운 우리강산’ 10호(162cm x 114cm) 1점을 기증했다. “한양대학교와는 인연이 깊습니다. 조카가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의사를 하고 있지요. 장남도 한양대학교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상철 원장님 이하 의료진들의 가족 같은 보살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을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림을 기증하게 됐습니다. 환자들의 정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화백의 아름다운 실천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세계 어린이를 돕는 유니세프에 그림 저작권을 5년 동안 넘겨줬다. 모교 아동들을 위한 신문 보내기 활동도 하고 있다. 향토적인 한국의 미를 화폭에 담아내다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이한우 화백은 독학으로 대성한 작가다. 교직생활 중에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이 화백은 197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의 영예를 안는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입선 4번, 특선 6번을 연거푸 차지했다. 이 화백은 예술의 중심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 8번이나 초대전을 열었으며 대한민국 문화보관훈장ㆍ문화은관훈장은 물론 국내 화가 최초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기사 훈장까지 받았다. 이한우 화백은 향토적 한국미를 화폭에 담는 화가로 유명하다. 이번에 기증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은 1980년대부터 발표해 온 연작시리즈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으로 극찬을 받고 있다. 작품의 표현 방식도 매우 독특하다. 청색ㆍ황색ㆍ적색ㆍ흰색ㆍ흑색 등 민족의 오방색을 사용해 동화적이면서 목가적 분위기를 낸다. 그중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이 넘치는 검은 윤곽선은 우리의 산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확인시키려는 듯 강렬하다.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에 기증한 ‘아름다운 우리 강산’ 역시 향토색 물씬 풍기는 그림이다. 옛 농촌풍경을 담은 그림에는 험준한 산 아래로 구불구불 길이 흐르고, 초가와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서 담소를 나누는 가족, 어머니 등에 업힌 아이, 광주리를 이고 길을 걷는 아낙 등. 민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칡뿌리 캐 먹고, 보릿가루를 쪄 먹을 만큼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 그림을 보며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함께 추억을 나누고, 아이들에게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이렇듯 그림은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까지 합니다.” 이 화백은 천안시에 그의 호 ‘동림’을 이름으로 내건 ‘동림미술관’ 오픈을 준비 중이다. 정식 오픈 전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그림으로 들어간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꼭 한 번 방문하길 바란다. ‘사랑의 실천’이라 하면 흔히 몸으로 때우는 노력봉사나 금전적인 지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한우 화백은 자신의 재능으로 사랑을 베푸는 아름다운 실천자이다. 향토적 한국미를 화폭에 담는 화가로 유명한 이한우 화백은 한양대학교 류마티스병원 의료진들의 가족 같은 보살핌에 감동을 받아 ‘아름다운 우리강산’을 기증했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은 1980년대부터 발표 해 온 연작시리즈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으로 극찬을 받고 있다. 글/한은희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아름다운 실천] 한양대학교의료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나눔 실천'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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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병원은 한결같은 감동 전해준 '30년 건강 길잡이', 이화산업(주) 조창환 회장
이화산업(주) 조창환 회장 “저와 제 가족은 30년간 한양대학교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몸이 좀 불편하다 싶으면 무조건 이곳으로 옵니다. 그 동안 이 병원을 이용하면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친분을 나누다 보니 의사분들은 물론이고 간호사, 청소하시는 분들과도 정이 들었지요. 친구나 지인 중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생기면 한양대학교병원을 강력히 추천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면서!” 조회장은 30년 전 한 친구를 통해서 한양대학교병원을 이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경성 전 한양대학교의료원장이다. 서울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안경성 의료원장이 이비인후과 조교수로 한양대학교병원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일하고 있는 병원을 찾게 된 것이다. “저는 경성이만큼 성실한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의사가 얼마나 힘든 직업입니까? 그런데도 경성이는 잠들기 전에 반드시 전화가 제대로 통화가 되는지 확인하고 잠자리에 드는 의사였어요. 환자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70대, 60대셨던 저희 부모님께서 기침 세 마디만 하셔도 저는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수시로 경성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한번도 힘든 내색 없이 언제나 먼저 병원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정성껏 진료를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 친구가 일하는 병원의 동료들도 참으로 성실하더군요.” 조회장은 30년 전, 한 친구를 통해서 한양대학교병원을 이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경성 전 한양대학교의료원장이다. 서울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안경성 의료원장이 이비인후과 조교수로 한양대학교병원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일하고 있는 병원을 찾게 된 것이다. 70대 노신사의 얼굴은 그대로 그의 이력서였다. 그윽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표정은 긍정적 삶의 자세를 읽을 수 있게 했고, 깊은 눈매는 삶의 지혜로 빛났으며, 따뜻한 태도에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이 어려있었다. 온화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던 조회장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작년 6월, 어머님께서 97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재작년에 타계하신 아버님께서는 100세를 누리셨기에 자식된 마음이 한스럽지는 않았는데 어머님께서 좀 더 제 곁에 계시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 아픕니다. 두 분 모두 장수하셨지만 자식된 마음은 아쉬움과 후회가 크지요. 그러나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서 6~7개월 입원해 계시는 동안 이곳 의료진들이 보여준 정성은 지극한 것이었어요. 14명의 교수님들이 긴밀한 협진 체계를 갖추어 어머니를 돌봐주셨습니다. 윤호주 호흡기내과 교수님은 하루에 10번을 찾아와 보살펴주셨지요.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장수를 누리신 것도 지난 30년간 한양대학교병원 의료진이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건강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효심을 간직한 조 회장은 어머님이 입원해 계실 당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손수 간병을 했다. 늘 병실 밖 복도에 서서 의사들을 맞이하고 어머님의 동태를 살핀 그는 한 번도 의자에 앉아 쉬는 일이 없었다. 내내 서서 어머님을 돌보는 그 모습은 의료진들에게 진정한 효심의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김정현 국제병원장은 “회장님을 수행하던 비서가 체력의 한계를 호소하고 일을 그만 둘 정도로 회장님의 효성은 놀라웠습니다. 그 모습에서 깨닫는 바가 컸습니다.” 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빼어난 사업가로서 활동했던 조창환 회장은 지금은 경영일선을 떠났지만 여전히 바쁘게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인왕장학재단이 사장, 서울고 총동창회장, 야구 후원회 회장, 창녕조씨 대종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 회장은 외유내강의 저력을 간직했다. 골프를 시작한지 34일만에 스코어 78타를 기록했고, 1년 반만에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한 달에 GMC트럭 한 대 반 분량의 공을 치는 투지를 발휘했던 그이다. “부모님께서는 늘 ‘무엇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라, 그래도 안 된다면 깨끗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지요. 이젠 그 가르침을 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어요.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매진하는 삶은 성공여부를 떠나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기반은 건강이지요. 지금까지 제 건강을 지켜준 한양대학교병원이 있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조 회장은 ‘고맙다’, ‘감동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 말속에서 겸허한 삶의 자세가 읽힌다. 그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건강 길라잡이는 한결같이 한양대학교병원이라며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글/박현숙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아름다운 이야기]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치유해 온 한양대학교의료원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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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한양대학교병원 홍보대사 겸 명예교직원 가수 현숙
한양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 혈액·종양병동. 의료진들의 발자국 소리 사이로 간간이 아이들의 기침소리만이 들려오던 이곳에 “안녕!” 노래하는 꾀꼬리처럼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금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챈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수줍은 얼굴에 홍조를 띄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달음에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이들도 있다. 눈물대신 환한 웃음으로 힘을 주다 함께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며 아이들의 병실을 하나하나 다 들른 그이가 이번엔 치료실을 찾아 한 소녀의 손을 꼭 잡아준다. “자, 우리 웃자. 아파도 웃을 수 있잖아!” 그이의 말에 척수액을 뽑기 위해 골반에 굵직한 바늘을 꽂는 고통을 맞닥뜨렸던 소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진다. 이마에 맺힌 소녀의 땀방울, 그것이 눈물방울보다 더 가슴아픈 그이지만 눈물대신 환한 웃음으로 힘을 준다. 바쁜 생활 틈틈이 이곳을 찾아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이 사람은 가수 현숙 씨이다. 현숙 씨는 한양대학교병원 의료진들과 30년 넘는 세월동안 돈독한 인연 맺고 있으며 지난 2007년 여름에는 이 병원의 홍보대사 겸 명예교직원으로 위촉되었다. “어머니께서 이 병원에 30여년 동안 다니셨어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곳도 이 병원입니다. 입원당시 어머니 병세가 좋지 않으셔서 다들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예상을 깨고 오랫동안 제곁에 머무르다 떠나셨어요. 어머니가 위독하셨던 45일간 함께 밤을 지새웠고 임종을 지켜봐주신 주치의 윤호주 교수님을 비롯하여 많은 의료진들이 극진히 보살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의료진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용기를 주셨어요. 이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지도 알게 되었어요.” 30여년 전 가수로 데뷔할 당시, 목이 아파 한양대학교병원을 찾은 현숙 씨는 의료진들의 따뜻한 마음에 끌렸고 쇠약해지신 부모님을 이 병원에서 모실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바쁜 가수생활이었지만 부모님을 섬기는 그이의 정성은 지극했다. 특히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하루 3~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당신 몸이 힘드신데도 어머니는 제게 항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셨어요. 한 송이 꽃 에서도 삶의 경이로움을 발견하실 줄 알았고 항상 예쁜 것만 생각해야 한다고 늘 얘기해주셨죠. 그 말씀이 언제나 제게 힘이 돼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으셨던 엄마는 아이들을 특히나 좋아하셨어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병으로 고통 받는 걸 가슴 아파하셨어요. 아픈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현숙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며칠 지나지 않아 한양대학교병원 측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소아암·백혈병 환자의 치료비로 써달라고 8,700만원을 기부했다. 어머니가 남기신 뜻을 실천한 것이다. “많은 분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어요. 그에 비하면 제 나눔은 아주 작을 뿐이에요. 부모님은 제게 사랑의 힘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병원 문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로부터 병원장님에 이르기까지 한양대학교병원 임직원들은 모두 가족같은 정을 주셨지요. 병원 환우들을 모시고 위문공연을 할 때 할아버지 한 분께서 유난히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봤어요. 웃는 얼굴로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제 노래 한 곡은 길어야 3분이지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져요.” 한양대학교병원은 더 많은 사랑을 가르쳐준 학교 가슴 따뜻한 효녀가수에게 한양대학교병원은 더 많은 사랑을 가르쳐준 학교였다. 그 사랑을 함께 하기 위해 그이는 지인들에게 병원을 소개했다. 과로로 신장이 좋지 않았던 친구 김혜영 씨는 “내가 있지 않느냐, 우리 함께 해보자”는 곽진영 교수의 말에 큰 힘을 얻었고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다. 현숙 씨의 고향 김제에서도 한양대학교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고향 어르신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시고 10년째 건강하게 지내고 계세요. 의학기술의 힘도 크지만 의료진들이 환자들 가슴에 심어준 용기가 더 큰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체험했으니까요.” 몹시 앓고 난 다음 날 아침의 하늘 빛, 바람의 향기는 얼마나 소중한가. 아픈 이들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며 그 속에서 강력한 사랑의 힘을 배운 가수 현숙씨가 환하게 웃으며 “오늘 하루, 후회 없이 사랑하세요!”라고 말한다. 오늘은 내일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우는 꽃씨이다. 내일도 그이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랑의 꽃 한 송이 피울 터이다. 글 : 박현숙 자유기고가 / 사진 : 김선재 STUDIO PENNYLANE [아름다운 실천] 한양대학교의료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나눔 실천’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01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