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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와 뇌파로 여는 감각의학의 새로운 지평

작성일
2026-05-26

새로운 길을 향한 멈추지 않는 도전

㉑​미래의학 프론티어

한양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정재호 교수

수많은 연구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모든 연구가 환자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재호 교수는 진료실에서 시작된 질문을 실제 환자에게 의미 있는 해답으로 연결하는 ‘임상 기반 연구’에 집중한다. 왜 같은 질환이어도 결과가 다른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는 이제 인공지능과 신경과학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질문을 더 정밀한 데이터로 바꾸고, 그 데이터를 다시 환자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 정재호 교수에게 연구란 결국,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진료다.

 


 

Q. 이비인후과 중에서도 교수님께서 가장 처음 관심을 가지셨던 분야와 초기 연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대학병원 진료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급성 귀질환, 특히 돌발성 난청과 전정신경염이었습니다. 이러한 질환들은 비교적 갑작스럽게 발생하고 환자에게도 불안과 고통이 큰 편이어서 진료실에서 마주할 때마다 매우 중요한 질환이라고 느꼈습니다.

초기에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런 진료 현장에서의 의문이었습니다. 같은 돌발성 난청 환자라도 어떤 분은 치료 후 청력이 상당히 회복되는 반면, 어떤 분은 충분한 치료를 해도 회복이 제한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전정신경염 역시 어떤 환자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어떤 환자는 어지럼과 불균형이 오래 지속됩니다. 저는 이런 차이를 단순한 개인차나 운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떤 환자가 더 좋아질 것인지, 반대로 어떤 환자는 회복이 더디거나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예측할 수는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청력검사, 전정기능검사, 영상검사 등 다양한 임상 지표들이 실제 예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이러한 경험이 이후 연구를 이어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심이 확장되어 축적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후 분석 연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변수들을 동시에 분석하고, 기존의 경험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패턴을 찾아내려는 시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지금까지 수행한 연구 중 교수님께서 특히 의미 있게 생각하시는 연구를 소개해주세요.

제가 특히 의미 있게 생각하는 연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 청각 학회학술지 『Ear &Hearing』 에 2022년, 2025년 게제된 ‛보청기 사용 여부에 따른 청각장애인에서의 치매 발생: 한국 전국 단위 인구 기반 연구’ , ‛인공와우 이식과 치매 위험 감소의 연관성 연구’로 난청 환자에서 청각재활이 인지기능과 삶의 예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빅데이터 연구입니다. 그동안 난청이 치매의 위험인자라는 점은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보청기나 인공와우 같은 청각재활이 치매 위험을 줄이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해 평균 10년 이상의 추적 관찰을 실행했습니다. 그 결과 난청은 조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재활하는 것이 환자의 의사소통 능력뿐 아니라 인지 기능, 사회적 기능, 장기적인 삶의 질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즉, 청각재활은 단순한 보조기기 처방이 아니라,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궤적을 바꿀 수 있는 개입이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고막 및 중이질환의 인공지능 진단 연구’입니다. 최근 이경 이미지나 고막 사진을 기반으로 다양한 질환을 구분하는 모델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이는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판독 소견을 보다 객관적이고 재현성 있게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시작했습니다. 기업과 함께 이를 의료기기로 구현하고 노력하고 있으며 향후 일차의료나 교육, 원격진료 보조, 의료 접근성이 낮은 환경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KIST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청각 신경과학 및 뉴로피드백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사람이 소리를 들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뇌파(EEG)로 측정하고, 이를 다시 치료와 재활로 연결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환경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할 때, 우리는 듣고 싶은 목소리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난청 환자나 고령 환자에서는 이런 선택적 청취 능력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과정을 뇌파 기반으로 분석하여, 환자가 실제로 어떤 소리에 주의를 두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반복 훈련하는 뉴로피드백 기반 청능훈련으로 연결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보다 객관적인 청각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고, 평가에 그치지 않고 치료와 재활의 개인맞춤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난청 재활뿐 아니라, 이명, 청각처리장애, 보청기 적합, 인공와우 재활, 고령자의 의사소통 저하 등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Q. 이외에도 최근 참여하신 연구 중 ECHO dot AI는 의료 접근성과 진단 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ECHO dot AI의 가장 큰 의미는 의료가 병원 안에 머무르지 않고 환자 가까이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귀 질환은 초기 판단과 적절한 선별이 중요한데, 모든 환자가 처음부터 전문의를 만나기 어려운 현실에서 AI 기반 진단 보조 기술은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진료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차별점은 단순히 “AI가 판독을 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재현성, 확장성입니다. 숙련된 전문의는 고막 사진이나 증상을 통해 많은 정보를 해석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환경에서 동일한 수준의 전문성이제공되는것은 아닙니다. AI는 진단의 편차를 줄이고 보다 표준화된 평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 일차의료기관이나 원격의료 환경,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보다 표준화된 진단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전문의를 대체하기보다 조기 발견과 환자 선별을 돕는 도구로서 의미가 큽니다. 정상과 이상을 구분하고, 빠른 전문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선별함으로써 진료의 효율성을 높이고 환자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AI는 진단의 정밀도를 높일 뿐 아니라, 진단의 접근성을 넓히고 교육과 재활, 장기 추적관리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도구로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기술은 의료의 본질을 대체하기보다 의사의 판단과 환자 이해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AI가 귀 질환을 진단하는 시대에 ‘의사만이 할 수 있는 듣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I가 잘할 수 있는 ‘듣기’는 데이터의 패턴을 읽는 일입니다. 영상, 검사 수치, 음성 데이터, 뇌파 신호 등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는 데 AI는 큰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 의사의 ‘듣기’는 다릅니다. 환자의 말 그 자체 뿐 아니라, 왜 그런 표현을 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고통을 이야기하는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함께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특히 귀 질환 환자들은 검사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편을 많이 겪습니다. 귀의 특징 중 하나는 환자가 자기 의지로 조절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눈은 감으면 빛을 차단할 수 있고, 손은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지만, 귀는 원하지 않아도 계속 자극을 받습니다. 소리는 항상 들어오고, 평형감각도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계속 작동합니다.

그래서 귀 질환은 환자에게 더 큰 피로감과 무력감을 줄 수 있습니다. 경도의 난청이라도 일상과 직장생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검사상 이상이 없는 이명 환자 역시 수면장애나 불안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어지럼증 또한 단순한 증상을 넘어 공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는 이러한 말 속에서 환자가 겪는 불안, 피로, 회피 행동, 사회적 위축까지 함께 이해하며 단순 증상을 넘어 삶의 변화와 질병의 의미를 듣습니다. 또한 환자의 말뿐 아니라 표정, 망설임, 반복되는 표현, 가족의 반응까지 종합해 판단합니다. 같은 증상이라도 그 원인과 의미는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맥락적 해석과 책임 있는 결정은 여전히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의사의 역할은 더 분명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AI가 데이터를 더 잘 읽는 시대일수록 의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듣고, 그 이야기와 데이터를 통합해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긴 시간이 걸리는 연구를 이어가다 보면 ‘이건 꼭 해내고 싶다’는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꼭 해내고 싶은 연구는 청각 노화와 귀 질환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고, 개인맞춤형 진단과 재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난청은 주로 청력역치라는 하나의 숫자로 평가해 왔지만 실제 환자는 훨씬 더 복합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같은 청력 수준이라도 말소리 이해, 소음 속 대화 능력, 피로도, 인지적 부담, 삶의 질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반영해 청각질환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아가 귀 질환 연구를 통해 고령화 사회에 맞는 감각의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난청, 이명, 어지럼증은 초고령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질 질환들로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삶의 기능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러한 질환을 예방과 조기진단, 재활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체계로 확장해, 환자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Q. 교수님께 연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연구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보며 왜 어떤 환자는 회복이 빠르고, 어떤 환자는 그렇지 않은지 끊임없는 물음표가 생기곤합니다. 연구는 이러한 질문을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검증 가능한 지식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임상적 의미와 진정성입니다. 방법론의 정교함도 중요하지만, 그 연구가 실제 환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진단을 더 정확하게 하고, 치료를 더 잘 설명하며, 환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협업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연구는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임상의학, 공학, 뇌과학, 데이터과학, 통계, 정책이 함께 어우러질 때 의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특히 제가 하고 있는 AI나 뉴로피드백 연구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할 때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연구란 결국 좋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진료, 연구, 교육을 병행하시며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과 역할의 균형입니다. 진료는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집중해야 하고, 연구는 긴 호흡과 꾸준함이 필요하며,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이 따릅니다. 세 가지 모두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물리적·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꾸준함과 팀워크였습니다. 연구는 단기간에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고 실패도 많기 때문에, 혼자 버티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서로 격려할 수 있는 팀이 중요합니다. 또 완벽한 결과를 한 번에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작은 진전이라도 쌓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다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환자와 미래 가능성입니다. 환자를 보면서 생기는 질문이 연구로 이어지고, 연구를 통해 얻은 답이 다시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큰 힘입니다.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오히려 동력이 됩니다.

 

Q. 한양대학교병원을 찾는 환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귀 질환이 결코 가볍거나 참고 견뎌야 하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난청, 이명, 어지럼증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적절한 진단과 치료, 재활을 통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나이 들어서 그렇다’, ‘원래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며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양대학교병원은 증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이 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함께 이해하고 해결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재호 교수는 ‛질문’이 이제까지 그를 이끌어 왔다고 거듭 강조했다. ‘왜 같은 병인데도 결과가 다를까?’, ‘조금 더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은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더 좋은 의료를 위한 질문이다. 귀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를 향한 정재호 교수의 사랑에는 끝이 없어서 정 교수의 질문 역시 끝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