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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의술의 만남 - 오귀스트 르누아르 & 관절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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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글. 조수경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아름답고 풍부한 색채 표현의 대가
1841년 프랑스에서 출생한 르누와르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도자기 공장에서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였다. 그는 태양 아래에서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적 색채 변화를 중시하는 인상파 그룹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다가, 후에는 독자적으로 풍부한 색채 표현을 통해 꽃, 어린이, 여성들을 주로 그렸다. 그는 말년에 만성적인 류마티스관절염을 앓으며 관절의 변형과 통증을 안고 그림 활동을 지속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누아르와 부인인 알린 르누아르에겐 세 명의 아들 피에르, 장, 클로드가 있다. 피에르는 훌륭한 배우가 되어 연극과 영화에 출연했다. 장은 1945년 <남부 사람>으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며 초기 프랑스 영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장의 영화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 르누와르가 관절염을 진단받았던 1900년대 초반까지 류마티스관절염은 통증을 일으키는 액성물질(rheum)이 몸 속에서 돌아다니다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관절의 손상과 변형을 막기 위한 치료방법도 따로 제시되지 못하였다. 1935년경이 되어서야 류마티스관절염의 치료로 금제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1940년대에는 요즘도 흔히 사용되는 약제인 설파살라진(sulphasalazine)이 개발되었다. 또한, 스테로이드가 1938년도에 관절통에 효과가 있다는 경험적 증례들이 보고가 되면서, 1949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르누와르는 류마티스관절염에 대해서 적절한 염증 조절과 통증 조절 치료도 없이 그저 고통을 견디며 투병하였을 것이다.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류마티스관절염’
류마티스관절염으로 진단을 받게 되면 경구로 복용하는 항염증치료제 및 항류마티스제제, 다양한 용법의 생물학적 제제들을 이용하여 적절한 치료 계획을 세우게 된다. 류마티스관절염에 대한 치료약제의 개발과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 전략에 대한 연구 성과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염증의 증거와 증상이 전혀 없는 관해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삼을 정도가 되었다. 또한, 향후 관절의 손상과 변형이 발생하지 않고 일상 생활에서도 기능장애가 줄어들며,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치료 약제들과 연구 결과들을 통하여 류마티스관절염은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는 불치병이 아니다. 조기에 진단하여 치료 계획을 세우고 규칙적인 관리를 한다면 건강하게 생활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안락함과 행복을 느끼해 해주는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그림은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예술과 의술의 만남 | 명작을 남긴 화가의 질환이 작품과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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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하게 해가 지고 있는 어느 오후, 창가에 웅크리고서 맞은 편에 앉은 아이와 여자들을 화폭에 담기에 몰두하고 있는 노 화가가 있다. 붓을 쥐고 있는 손은 과하게 오므라져있어 몹시 불편해 보인다. 손가락 관절은 모양이 어긋나 있거나 잘 펴지지 않아 손에 붓을 끼워 쥔 채, 천 조각으로 감아 고정시켜 물감을 찍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