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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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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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권하는 남자 - 김이석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그의 사전에 VIP는 없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환자들이 김이석 교수에게는 VIP란다. 병원 입장에서는 깜짝 선언이 아닐 수 없겠지만, 어쩐지 환자라면 나를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줄 그에게 나의 ‘새 삶’을 맡기고 싶을 것이다. 20년째 한양대학교병원에 개근하고 있는 신입사원, 김이석 정형외과 교수를 만나본다.

한양대학교병원 김이석 정형외과교수

한양대학교병원 김이석 정형외과교수

동안 의사의 고충

연구실에 앉아 있는 김이석 정형외과 교수를 보고는 일순 갸우뚱했다. 김 교수의 공간에 웬 의대생이 앉아 있나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남자, 자연스럽게 일어나 취재진을 맞으며 인터뷰를 앞둔 고양감을 수줍게 내비친다. 그가 바로 우리가 만나려던 김이석 교수가 맞았다. 흰 가운에 수놓인 이름 석자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모습에 대해, ‘교수님’의 나이에 대해 고정관념을 품고 있었음을. “머리를 하얗게 염색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어요. 어떤 환자분은 저랑 진료실에서 만나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수술일정까지 잡았는데 나중에 글쎄, 교수를 만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웃음)” 환자들로부터 “수술은 선생님이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김이석 교수. 그는 석연치 않은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취재진에게 익숙하다는 듯, 그리고 짐짓 유쾌하게 ‘동안 의사의 고충’을 말해주었다.

“제가 고관절 분야를 맡고 있다 보니 환자들 대부분이 고령이시거든요. 그분들 연세에 ‘의사’는, 더구나 ‘교수’라고 하면 머리도 좀 희끗희끗하고 저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분을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어리게 보이는 의사가 교수입네 하고 나타나니까 걱정들이 좀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환자들의 새 삶을 짓는다

한양대학교병원 김이석 정형외과교수타고난 동안 덕에 환자들에게 존경보다 귀여움(?)을 받지만 우려는 고이 접어두어도 좋다. 김 교수는 고관절 질환에 관한 한 국내외에서 두루 인정받고 있는 의사다. 첫째도 둘째도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그는, 수술도 수술이지만 수술 이후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살뜰히 살피는 자상한 의사로도 유명하다. “수술 받은 이후에 환자분의 경과가 좋지 않을 때 저는 가장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제가 맡고 있는 분야가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한 개인의 삶의 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환자가 웃으면서 퇴원하시는 모습을 봐야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뼈와 관절을 다루는 정형외과 질환은 일반적으로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고관절이 골절되거나 고장 나면 여생을 누워 있어야 한다. 때문에 환자들의 삶의 질 문제에 보다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환자들의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의무이자 사명이라는 그의 말에 힘이 실렸다.

“제가 수술한 환자 중 가장 연세가 많은 환자가 기억에 남네요. 고관절 골절로 오신 할머니신데 98세 정도 되셨어요. 수술하시고 저한테 다시 안 오셔서 혹시 돌아가신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1년 뒤에 오셨어요. 이번에는 허리도 수술 해달라시며. (웃음)”

건강하게 거동하는 할머니를 뵈니 김 교수는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말이 98세지, 거의 모든 기관이 100년 가까이 기능을 한 것이다. 만약 그가 위험부담으로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이 고령 환자는 다시 걷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몇이든, 그는 환자들에게 새 삶을 지어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 저는 수술을 권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수술 받지 않고 가시는 길이 훤하거든요. 다른 부분의 골절과 달리 고관절 쪽의 골절은 환자가 거동을 할 수가 없어요. 본인이 거동 할 수 없으니 남의 손을 빌려야 하고 그건 결국 가족들이 짊어져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수술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결국 이 수술은 해봄직한 수술이고, 수술 하시는 게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어요.”

20년째 개근 하는 신입사원

93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래, 군대 간 3년을 제외하고 한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 없다는 김이석 교수는, 자신이 한양대학교병원의 ‘신입사원’이라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병원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그는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새 길을 열고자 하는 열망은 곧 연구성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2009년에 이어 2011년에도 대한고관절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대한정형외과학회 학술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학술상은 연구팀이 함께 이룬 결과라며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고 손사래 쳤다. “인공관절 쪽 연구는 현재 많이 진행하고 있지만, 새로운 쪽을 개척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고관절 내시경 분야라든가, 인공관절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환자가 자기 것으로 더 오래 쓸 수 있을까 하는 연구 말이죠. 조금 더 나아간다면 뼈의 재생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싶고요. 또 제 환자들이 대부분 노령이라 골절 환자들이 많아요. 골다공증도 많고… 그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도 제 사명이지 않을까 합니다.”

“제 모토는 그겁니다. 저에게 VIP는 없다는 것. 저에게 오는 모든 환자가 VIP입니다. 특정 환자를 VIP로 여기고 치료하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모든 환자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세상으로 통하는 문”

한양대학교병원 김이석 정형외과교수애 띤 얼굴과 달리 김이석 교수는 사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19개월 된 늦둥이 딸을 가진 ‘아빠’다. 활발한 연구활동과 빼곡한 진료·수술 스케줄 덕에 이렇다 할 취미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김 교수는 가정에 소홀하지는 않은 양 보였다. 그에게 가족 이야기를 꺼내니 만면에 미소가 떠오른다. 특히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쑥스러운 듯 말을 아끼면서도 뜨거운(?) 애정을 과시했다. “서른 즈음에 지인의 소개로 처음 아내를 만났습니다. 장소는 기억에 없는데 어딘가 문 열고 들어가보니 광채가 비치는 아가씨가 앉아 있었어요.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눈이 멀뻔했죠. 그렇게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분명히 제 아내도 보겠죠?(웃음)” 아내가 볼 것을 예상해 스물여덟에 만난 그이가 ‘죽어도 첫사랑’이라는 너스레에 좌중은 한바탕 대소했지만, 결혼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를 볼 때마다 설렌다고 말하는 그는 ‘이게 다 진실인가?’ 궁금증이 일게 할 만큼 진지했다. 그는 아내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배운다고 했다. “아내는 미국 주정부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병원에서만 지내는 저보다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고, 훨씬 큰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죠. 아내에게 배우는 점이 참 많습니다. 제게는 아내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랄까요?”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이를 누구보다 존경하는 남편으로 살고 있는 김이석 교수.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세월을 더듬는 그의 눈빛은 그 속에 쌓아둔 추억마저 고스란히 감촉하는 듯 했다.인터뷰 말미에 의사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그에게,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훌륭한 의사, 연구자, 아빠, 남편”이라고 심플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는 지금 이룬 꿈들을 보듬으며 위대해질 모양이다.

글. 백아름  사진. 김상민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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