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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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골든타임에 만나는 희망 - 강형구 응급의학과 교수

골든타임. 생사를 가르는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적절한 조치를 한다면 환자는 삶으로 복 귀할 수 있다. 그래서 강형구 교수에게 골든타임은 온 힘을 다해 희망을 일구는 시간이다. 다시 삶을 꿈꿀 누군가를 위해, 강형구 교수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글. 윤진아 사진. 김재이

안녕하세요 선생님, 강형구 응급의학과 교수

세상의 모든 아픔과 마주하는 전장에서

응급실은 인간의 모든 아픔과 마주하는 곳이다. 사고나 재해 등으로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을 가장 먼저 만나고 치료하는 응급실에는 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경증부터 중증까지 다양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강형구 교수는 ‘내 가족의 일처럼 세심하게 돌보는 해결사’를 자처한다.

“얼마 전 초오뿌리로 찌개를 끓여 먹은 일가족 3명이 한꺼번에 응급실로 이송됐어요. 초오는 청산가리보다 30배 강한 독성을 가진 위험한 식물이죠. 다행히 엄마와 아들은 찌개를 적게 먹어 비교적 간단한 처치로 회복할 수 있었지만, 60대 가장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정지가 발생했어요.”

퇴근을 앞두고 응급실을 둘러보던 강형구 교수는 환자 셋의 심전도가 이상하다는 보고에 서둘러 다시 가운을 입었다. 그를 비롯한 전문의 3명이 새벽까지 150회의 전기충격 치료와 심폐소생술을 거듭한 끝에, 환자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다음 날, 의식이 돌아온 환자가 강형구 교수에게 건넨 말 한마디는 몇 끼니의 밥보다 든든한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고 있단다.

“보통 심장이 멈춘 상태는 기억을 못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환자는 그 순간을 기억하더라고요. ‘가슴이 타는 듯이 아팠는데, 고통이어야 할 전기충격이 매번 참 시원하게 느껴졌다’면서 ‘밤새 자신을 살리려고 고군분투한 의료진 덕분에 이렇게 살았다. 정말 고맙다’고 연신 되뇌셨죠. 그분을 비롯한 일가족 모두가 아무 후유증 없이 열흘 뒤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습니다.”

한편 최근에는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들이다.

“번개탄 자살 기도, 가스 누출, 화재 등으로 급성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치료에 필수적인 고압산소치료 의료수가가 턱없이 낮아 대다수 병원이 진료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고압산소치료시설을 갖춘 병원은 크게 부족한 실정입니다. 여러 환자를 동시에,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고압산소치료센터를 갖춘 병원은 더욱 드물죠.”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환자일지라도 신속하게 치료를 받으면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초기에 회복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파킨슨병, 치매, 뇌졸중에서 보이는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고압산소치료기가 있는 병원이 드물어 시간을 다투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응급환자를 위해 24시간 고압산소치료기를 가동하는 병원은 한양대학교병원이 유일합니다. 때문에 서울 시내는 물론이고 의정부, 수원 등 수도권 외곽에서도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생기면 우리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요. 거리가 멀어도 보낼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까요. 또, 우리 병원이 제일 잘 받아주고요. 작년 5월 말 고압산소치료실을 개소한 이후 1년도 안 돼 180여 명의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현재 입원 중인 환자 한 분도 응급실로 실려 왔다가 지금은 재활의학과로 전과했죠. 걷지도, 말하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던 환자가 고압산소치료 후 자신의 힘으로 걸어 다니며 책도 보고 말도 하게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강형구 응급의학과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사회 안전망’

한양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과장인 강형구 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응급의료센터 소장을 겸직하며 국가응급진료정보망 전담팀장, 재난의료책임자, 신속대응팀장 직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 1월 문을 연 한양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권역 내 중증 응급환자들에게 최적의 응급의료를 제공함은 물론 재난상황 발생 시 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강형구 교수는 “권역응급센터 역할을 위해 병원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병원 전체가 응급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응급의료는 협력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어요. 중증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언제든 전문 의료진을 투입하고, 우리 권역의 응급의료 인력이나 자원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병원 전체가 움직이고 있지요.”

강형구 교수는 2015년 전국을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확산 방지에 앞장선 공으로 감염내과 배현주 교수, 응급의학과 오재훈 교수 등 한양대학교병원 10여 명의 의료진 및 관련부서 교직원들과 함께 서울특별시장 표창장을 받았다.

“당시는 서울 동부 지역의 대형병원 응급실들이 속속 폐쇄되는 상황이었어요. ‘한양산성만큼은 반드시 수성해야 한다’는 각오로 원장님 이하 의료진이 매일 회의를 거듭하며 총력전에 나섰죠. 다행히 초기 격리가 잘 되어 ‘감염병 청정병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며 회상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전 의료진이 ‘이곳마저 뚫리면 서울을 잃게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니까요(웃음). 지금 권역응급의료센터 자리는 그때 임시진료소가 차려졌던 곳이에요.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솔선수범했던 동료들에게 이 기회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모든 생명에 보내는 경의

안녕하세요 선생님, 강형구 응급의학과 교수응급의학과 교수로서 숱한 환자를 치료하면서 보람을 느껴왔지만 정작 가슴에 사무치도록 기억에 남는 환자는 끝내 유명을 달리한 환자들이다. 전공의 시절, 약 합병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가 3일 만에 맥없이 숨을 거둔 아이를 떠올렸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의 중학생이었어요. 피부가 좋아진다는 약을 잘못 먹었다가 청색증과 저산소증을 동반하는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이 발병해 강원도에서 전원한 환자였죠. 하지만 해독제에 전혀 반응하지 않아 의사로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인공호흡기를 뗀 얼굴에 침과 피가 묻어있었는데, 부모님이 마지막 모습을 예쁜 얼굴로 기억할 수 있도록 닦아줬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다른 처치법들이 발전해 해독제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당시엔 방법이 없었죠.”

의사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던 그 순간은 지금까지 강형구 교수를 움직이는 뜨거운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분일초가 모자랄 만큼 숨 가쁜 일과를 마치고서 또다시 밤늦게까지 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다. 날마다 현대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질병 역시 더 깊고 넓게 퍼져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하지만 병원의 위기관리 능력에 따라 재앙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강형구 교수를 비롯한 한양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20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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