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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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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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이후의 삶까지, 부인암 가이드러너. 배재만 산부인과 교수

‘고치기 힘든 암’의 대명사인 난소암과 더불어 자궁경부암, 외음부암, 자궁내막암 등의 부인암은 환자뿐 아니라 모든 가족의 현재와 미래의 숙제다. 배재만 교수는 가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환자별 맞춤 치료 계획을 세우고 인생 중심의 치료 방식을 설계한다. 암환자의 생식능력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이고도 통합적인 치료를 제안하는 그를 통해 고통과 불안 앞의 환자들은 희망을 발견한다. 수술 이후에도 환자의 삶을 보듬으며 동반자 역할을 자처하는 가이드러너, 배재만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윤진아 사진. 김재이

수술 이후의 삶까지, 부인암 가이드러너 배재만 한양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즐거운 생명의 요람

자궁 양옆에 있는 난소는 임신에 필요한 난자를 성숙시켜 배출하고 여성호르몬을 분비하는 중요한 장기다. 문제는 몸속 깊숙이, 골반 안에 있다 보니 질환을 제때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배재만 교수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부인종양 분야의 명의(名義)다. 인터뷰를 위해 한양대학교병원 분만실 앞에서 만난 배재만 교수는 “갑작스러운 출산 환자를 받느라 새벽 2시부터 깨어 있는 터라 행색이 엉망이다”는 너스레로 취재진을 맞았다.

“의대 본과 3학년 때 산부인과로 진로를 정했어요. 다른 과와 달리 산부인과 환자들은 새 생명을 안고 웃는 얼굴로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도 더 클 것 같았거든요. 그때만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내원하는 유일한 진료과’라는 지극히 낭만적인 기대를 품었던 것 같아요.(웃음) 인턴 시절 처음 제 손으로 아기를 받았던 날은 공교롭게도 제 생일이었습니다. 새벽 1시경 태어난 건강한 여자아이였는데,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던 하루를 위로해준 최고의 생일선물로 기억합니다.”

발생 부위가 골반 안쪽인 부인암은 조금만 발견이 늦어도 복강 내 주변 장기로 전이되기 쉽다. 난소암은 간 주위 횡격막과 복강 내로, 진행성 자궁경부암은 인접한 직장 쪽으로 잘 옮겨 붙는다. 때문에 한양대학교병원 산부인과는 부인암 환자의 경우 초기부터 전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과 교수들과 공동 운영하는 다학제 협진 시스템을 가동한다. 부인암 진료를 특화한 부인종양센터에서는 산부인과를 비롯해 혈액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비뇨기과, 핵의학과 등 관련 팀이 협진을 통해 완벽한 치료계획을 수립해 후유증이나 합병증을 최소화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젊은 러시아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내원한 적이 있어요. 이미 암세포가 방광까지 침범해 소변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 상태였죠. 당장 방광을 떼어내지 않으면 출혈 때문에 죽을 정도의 상태였는데, 11시간 꼬박 수술해 인공방광을 만들고 질 성형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건강은 물론 성생활과 생식능력에도 문제없을 거란 말에 크게 기뻐하던 부부의 얼굴이 생생합니다.”

각 과 의료진이 환자 몸속에 일어난 아주 작은 변화와 이상 증세도 놓치지 않고 치료계획을 결정한 결과다. 배재만 교수를 비롯해 당시 수술에 참여했던 산부인과, 비뇨기과, 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의료진을 주축으로 향후 이 같은 다학제 협진 시스템을 더욱 활성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해 11월엔 ‘암 생존자 클리닉(가칭)’도 발족했다.

암환자 가임력 보존할 다학제 협진 시스템 가동

의학과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암이 더이상 사형선고가 아니게 됐지만, 여전히 암은 치료 후에도 많은 숙제를 남긴다. 암 종별로 다르지만 부인암 분야도 전체적으로 70% 이상의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다.

“일단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생식기능은 급격히 감소하고, 이후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가 없게 됩니다. 암 진단 이후엔 대개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에 들어가는데, 항암제를 복용하면 난소 기능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합니다. 비단 암뿐만 아니라, 같은 약을 복용하는 류마티스 환자들도 마찬가지죠. 진단 당시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한 상태라 하더라도 아직 출산하지 않은 경우, 또한 아이를 더 갖길 원하는 경우엔 모두 가임력 보존 치료가 필요합니다.”

수술 이후의 삶까지, 부인암 가이드러너 배재만 한양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외과 정민성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김석현 교수, 이비인후과 송창면 교수 등 최고의 의료진과 머리를 맞댄 배재만 교수의 하루도 더욱 바빠졌다. 배재만 교수는 암환자의 생식능력 유지 및 장기적・통합적 설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각 과 교수들과 협진을 통해 암 진단과 동시에 치료계획을 세울 때 가임력 보존 방법도 같이 논의해 최적의 해법을 제공한다. 정기적인 모임 이외에도 환자 상황에 따라 수시로 미팅이 이루어진다. 시간도 많이 뺏기고 수익구조를 생각하면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암 생존자의 삶의 여정에 통합적으로 관여하는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암 진단 순간부터 환자에게 ‘생식기능을 보존하려면 지금 난자를 채취해 보관하는 게 좋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난자동결보존은 배우자가 없는 여성 암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가임력 보존 방법이죠. 33세의 젊은 나이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울고 있던 환자에게 그 말을 전하던 순간이 떠오르는데요. 황망함과 절망으로 내내 울기만 하던 환자가, 의료진과의 미팅 후 안정을 찾고 몰라보게 강해진 모습으로 이후 치료에 임하더군요. 길고도 혹독한 전투가 될 것이라는 자각이 환자를 한층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 환자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2주 정도 늦추고 난자 22개를 동결했습니다. 현재는 배우자가 없는 상태이니 일단 채취한 난자를 수정해두고, 나중에 22개의 임신 가능 기회를 저축해둔 셈이죠.”

암 치료에는 고도로 숙련된 의사들의 팀워크가 중요하다. 힘든 치료과정을 잘 견뎌내야 할 환자의 굳은 의지와 믿음도 필요하다.

“지난해 말부터 관련 의료진과 정기적으로 미팅을 하며 환자들도 몇 차례 만났어요. ‘우리가 앞으로 당신과 쭉 같이 갈 거다’, ‘암 극복 이후 삶의 질을 높이려면 이렇게 하는 게 좋다’는 지침을 알리고 환자별 맞춤 치료계획을 제시해주죠.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아질 것 같습니다.”

환자 마음까지 치료하는 ‘부인암 파수꾼’ 될게요!

수술 이후의 삶까지, 부인암 가이드러너 배재만 한양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저출산 시대, 고위험군 산모와 신생아를 돌볼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의료계의 책임이라고 단언하는 배재만 교수는 소아 청소년, 미혼 여성, 출산 여성, 중장년 여성 등 여성 생애 주기에 따른 다양한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끝없는 항암치료와 수술, 전이, 재발을 반복하며 웃어도 웃는 게 아닌 환자들 앞에서 의사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에 힘이 실린다.

환자를 향한 측은지심이야말로 ‘의사 배재만’을 더욱 분발하게 하는 힘이다.“자궁경부암, 자궁체부암, 난소암, 외음부암, 질암, 융모막암 등 대부분의 부인암은 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이 가능하고 완치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해 검사 받고, 암 진단을 받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저희 의료진도 포기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그 여정에 함께하겠습니다.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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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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