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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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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 희망 새기는 긍정의 힘 - 엄지은 혈액종양내과 교수

세기의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도, 한류의 물꼬를 튼 드라마 <가을 동화>의 주인공도 끝내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오랜 세월 불치병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쳐온 백혈병은 엄지은 교수에게는 필사의 숙제이자 동반자다. 환자에게 ‘완치’의 희망을 선물하는 희열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엄지은 교수의 상기된 목소리를 통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글. 윤진아 사진. 김지원

엄지은 혈액종양내과 교수

조혈모세포이식·혈액암 치료 새길 연다

2015년 조혈모세포 이식센터를 리뉴얼하고 조혈모세포 이식 전문의인 엄지은 교수가 합류하면서, 한양대학교병원은 조혈모세포 이식 분야에서 한발 앞서가게 됐다. 엄지은 교수는 혈액 종양내과 전임의를 거쳐 캐나다 프린세스 마가렛 암센터에서 전임의 및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팀 전문의로 활약했다.

일반적으로 ‘골수 이식’으로 잘 알려진 조혈모세포 이식은 백혈병, 악성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 혈액종양 환자의 암세포와 조혈모세포를 제거한 다음 새로운 피를 생성할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치료법이다. 정교함과 정확성, 적시성을 필요로 하기 때 문에 시술 중에서도 고난도 시술에 속한다. 다양한 임상경험을 토대로 엄지은 교수는 자가 및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급성백혈병, 골수이형성증, 재생불량성 빈혈 및 각종 혈액질환 환자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환자 중에는 중증환자가 많고, 이식 후에도 여러 합병증 관리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면역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긴 회복기를 가져야 하죠. 한양대학교병원 조혈모세포 이식센터는 24시간 무균 상태를 유지하는 중앙집중식 제어 시스템 등 각종 첨단 의료 시설과 함께 임상경험이 많은 전문 담당 교수와 전공의, 전문 간 호사들이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장기간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의학은 가장 인문학적인 과학

학창시절에는 물리학과 지구과학에 심취했던 과학도였다. 돌이켜 보면 근본적인 관심은 생명이었던 듯하다. 밤새워 공부하던 의대생 시절, 그리고 속절없는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레지던트 시절, 스스로 되뇌었던 다짐들을 하루하루 차곡차곡 실현 중이다.

엄지은 혈액종양내과 교수

“현대의술에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내과 중에서도 만성질환, 중증환자가 많은 혈액종양내과는 그만큼 ‘주치의’로서의 사명감과 보람도 큰 진료과입니다. 환자의 고통과 절망만큼 의료진도 지칠 때가 많지만, 환자들을 위한 최선을 고민하면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궁극적으로 환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저를 믿고 찾아온 환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전체 암 환자의 10%가량을 차지하는 혈액암은 전신을 순환하는 혈액 내에 떠다니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 혈액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이다. 그래서 진단할 때 이미 전신에 퍼져 있고 진행이 매우 빠르다. 혈액세포뿐만 아니라 혈액응고계 등 혈액 전반의 상태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혈액암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엄지은 교수는 호주 아시아태평양 임상 암 연구개발워크숍 (ACORD Workshop) Travel Award(2008), 제33회 유럽암학회 Travel Award(2008), 제55회 미국 혈액학회 우수초록상(2013) 등을 수상하는 등 연구에 꾸준히 힘을 쏟고 있다. ‘시술 이후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하는 엄지은 교수는 동종 조혈모세포이식 후의 합병증 및 면역상태에 관한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이식 시술까지가 절반, 그 이후를 나머지 절반으로 봅니다. 면역의 기본은 ‘인지’예요. 백혈구가 자기와 같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인지해 다르다고 판단되면 면역 반응을 보이죠. 합병증과 부작용을 잘 이겨내야만 진짜 이식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식에 따른 합병증 발생과 사망 위험, 이식 후 예상되는 생존율을 고려해 최선의 치료 목표와 치료 방법을 결정해야 하고, 약을 평생 먹는 만큼 부작용 걱정 없이 건강한 사람과 같은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도 의료진의 몫입니다.”

당신은 ‘건강한’ 백혈병 환자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환자와 의료진을 막론하고, 매 순간 초심을 다잡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매일 누군가가 죽어 나가는 병원 속, 하룻밤에 사망진단서 석 장을 쓴 적도 있던 레지던트 시절을 떠올리며 엄지은 교수는 매일 자신을 채찍질한다. 엄 교수는 레지던트들의 불만이 속출할 만큼 회진 시간이 긴 의사로도 유명하다.

“백혈병의 경우 환자들 스스로 ‘죽는 병’이라고 인식하는데, 의료진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환자에게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치료는 진전도 의미도 없거든요. 과거 만성골수백혈병은 4~6년간만 생존할 수 있는 불치병이었지만, 치료 기술이 발달해 이제는 치료제 복용만으로도 안정적인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 됐습니다. 또한, 모든 혈액암은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하면 완치 가능성이 있습니다. 완치되지 않는 경우에도 부작용이 크지 않은 치료를 계속하면서 장기간 생존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만큼, 환자가 희망을 놓지 않도록 곁에서 용기를 북돋워드리고 있습니다.”

먼 훗날, 자신의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살 맛이 나게 만들어준 의사’였다고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엄지은 교수는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책장 한쪽에 꽂힌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제자들에게도 종종 권하는 책이다.

엄지은 혈액종양내과 교수

“의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언젠가 죽게 마련이잖아요. 일부 만성질환, 중증환자의 연명 치료는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에요. 단 1%의 가능성도 놓지 않고 생명을 살리려는 ‘의사로서의 최선’이 과연 환자를 위해서도 최선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의학은 규칙대로 돌아가는 수학과 물리학과는 달리, 관찰돼 정립된 생물학적 특성도 환자마다 미묘한 차이를 보이죠. 환자를 볼 때마다 충분히 관찰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온 세포가 병원에 집중돼 있다 보니 일상과 여가의 범주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환자들이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노라고 했다. 지금껏 뭘 했나 돌아봤더니, 결국 자신이 지향했던 것은 과학, 그리고 사랑이었노라 고 했다. 믿을 수 있는 주치의가 되어 ‘환자를 위한 최선’을 고민하고 희망적인 대안을 내놓겠다는 엄지은 교수의 따뜻한 에너지가 병원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이유다.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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