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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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 수 없는 한 생명의 소중함, 25주 만에 태어난 난민신청자 아기

2015년 12월, 터키 남부 해변에서 발견된 난민 어린이 쿠르디의 사진 한 장이 세계인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은 설령 갈리더라도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전제는 부정할 수 없다.

한양대학교병원은 미숙아로 태어나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 난민신청자 리세테 님과 그녀의 아기 제이든의 손을 잡아주었다.

글. 정라희 사진. 김지원

외면할 수 없는 한 생명의 소중함

25주 만에 태어난 난민신청자 아기

외면할 수 없는 한 생명의 소중함아기가 엄마 뱃속에 머물러야 하는 기간은 약 40주. 10월 24일에 태어난 제이든은 그 기간에 한참 못 미치는 25주 만에 태어 났다. 갓 태어났을 때 제이든의 몸무게는 불과 840g이었다. 일반적으로 재태 기간(임신 후부터 출산 전까지 태아가 자궁 내에서 성장하는 시간) 37주 혹은 출생 당시 몸무게 2.5kg 미만이면 미숙아로 분류된다. 1.5kg 미만이면 극소 미숙아, 1kg 미만이면 초극소 미숙아에 해당한다.

리세테 님이 몇몇 병원을 돌아 한양대학교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지 10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산모에 대한 기본적인 검사조차 할 수 없던 급박한 상황 속에 의료진들이 응급실로 달려왔다. 바로 분만하지 않으면 태아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의료진은 리세테 님을 바로 분만실로 옮겼고, 제이든을 받은 후 바로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겼다. 제이든을 치료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박현경 교수는 “분만 후 시행한 태반 조직 검사에서 이미 태반이 염증으로 번져 있었다”고 전한다.

세상에 나온 제이든의 상태는 심각했다. 호흡곤란증후군이 있는 것은 물론 뇌실에 뇌출혈이 발생한 뇌수종증까지 발견되었다. 초극소 미숙아인 제이든은 뇌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의료진들이 긴급하게 바깥쪽에서 제이든의 뇌실까지 구멍을 뚫어 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했다. 이는 대학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고난도 시술이다. 그로부터 신생아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6주를 더 머물렀지만, 여전히 제이든의 몸무게는 극소 미숙아 기준인 1.5kg에도 못 미치는 1.2kg에 불과하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나오려면 최소 38주는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한 달은 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난민과 함께하는 사랑의 손길

외면할 수 없는 한 생명의 소중함소중한 아기가 태어났지만 초극소 미숙아로 태어난 제이든의 치료비를 난민신청자인 산모가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라면 신생아중환자실 치료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이라도 한국에서 출산을 하면 대사관 등을 통해 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난민신청자인 리세테 님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데다 본국의 지원도 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임신 사실을 알릴 새도 없이 아기 아빠는 이미 본국으로 돌아가버린 후였다. 또한 그녀가 살던 지역 내부의 분쟁으로 본국의 두 오빠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말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카메룬에서 고등 교육을 마친 인재였지만 리세테 님의 한국에서의 경제 활동은 녹록하지 않았다. 현재 머무는 시설이 있는 경기도 파주의 한 공장에 취직하기도 했지만, 제이든이 태어나기 전 해고되고 만 것. 제이든과 리세테 모자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은 한양대학교병원 구성원들이었다. 전 교직원들은 이들을 돕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가장 먼저 사회복지팀은 근무하던 봉제공장에서 해고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리세테 님을 오랜 시간 상담하며 치료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았다. 치료비 기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수소문했고, 어렵사리 치료비 일부를 모았다. 또한 출산 후 꼭 필요한 분유와 기저귀도 지원하는 등 가족 같은 보살핌과 세심한 배려를 더했다. 한 직원은 산후조리에 보태라며 리세테 님에게 금일봉을 직접 건네기도 했다. 이러한 사연이 사내 통신망을 통해 알려지자 교직원들은 적극적으로 치료비 모금에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다. 또한 대외홍보팀 주선으로 경향신문(2019년 12월 4일자)에 제이든과 리세테 모자의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도 후원금을 보내왔다.

다시 꿈꿀 수 있도록

외면할 수 없는 한 생명의 소중함한양대학교병원 사회복지팀 성명순 사회복지사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국경을 초월한 모성애가 강하게 다가왔다”고 말하며 인도적인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이들 모자의 사연에 많은 공감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이제 리세테 님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제이든의 장래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쏟아지다가도 다시 입가에 미소가 돈 다. 제이든이 건강하게 회복해 성장한다면, “자신의 고국인 카메룬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아픈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 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도 꾸어본다. 영국의 총리였고 문학가였던 처칠이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는 일함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간다.” 생명을 살리는 이들은 의사만이 아니다. 외면할 수 없는 한 생명의 소중함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모으고 있다.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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