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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의술의 만남 - 알코올사용장애 & 정신건강의학과, 툴루즈 로트렉

술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인가, 예술가의 무덤인가

노성원 교수프랑스 귀족 출신인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은 대표적인 후기 인상파 화가로, 불구의 몸으로 짧은 생애 동 안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폭탄주 제조가 취미였던 그는 지속적인 과음과 폭 음으로 인해 알코올중독으로 입원치료까지 받았으나, 결국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쳐 더 이상 위대한 작품들을 남기지 못했다.

글. 노성원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밤과 술을 사랑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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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잔아브릴, 1893 서로 사촌 간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근친결혼으로 태어난 툴루즈-로트렉은 유전적인 결함으로 선천적인 건강문제가 있었다. 13세에 우측 대퇴골 골절, 이듬해엔 좌측 골절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아 더는 다리가 성장하지 못해 성인 이 되어서도 142cm로 키가 매우 작았다. 다른 귀족들처럼 승마, 사냥 등 귀족의 전원생활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해진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드가, 고갱, 고흐와 친분을 맺은 그는 작품세계 역시 그들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귀족사회의 허위와 위선 등을 미워하였으며, 가난한 화가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압 생트(Absinthe)라는 독주를 즐겼다.

압생트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많이 마셨던 술로서 알코올 도수(45~74%)가 매우 높으며,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창조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로트렉은 작은 키와 외모로 조롱을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한 슬픔을 술로 많이 달랬다. 압생트와 꼬냑이 반반 섞인 칵테일 어스퀘이크 (Earthquake)는 로트렉에 기인한 것이다.

30대가 된 로트렉은 점점 그림은 적게 그리고, 바와 카바레를 드나드는 데 빠져 있었다. 친구인 타데 나탕송의 말에 따르면, 술을 먹는 동안 로트렉은 “끊임없이 웃으며 딸꾹질을 해댔다. 술에 취해 울음이 나올 때까지 웃었다”고 했다. 1897년 여름에는 상상 속의 거미를 향해 권총을 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길을 걷던 로트렉이 경찰이 자신을 추적하기 때문에 친구 집에 숨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899년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격렬한 발작을 일으킨 후, 로트렉은 뇌일리의 마드리드가에 있는 병원에 3개월간 강제로 입원하게 된다. 의사는 로트렉의 어머니에게 그의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선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했다. 퇴원 후에도 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급격히 쇠약해져 갔으며, 1901년 36세의 나이로 알코올중독과 매독으로 어머니가 있는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음주도 지나치면 병, 알코올사용장애

물랭 가의 살롱, 1894 물랭 가의 살롱, 1894 알코올은 대표적인 신경독성 물질이며, 중추신경억제제이다. 술을 마시면 졸리고,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 등이 떨어지는 것은 바로 알코올의 이러한 작용 때문이다. 일시적인 해방감, 기분 상승 등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고, 전두엽의 억제기능을 마비시켜서 생기는 현상이다. 술을 마시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필름 끊기는 현상은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첫 번째 신호가 될 수 있다.

물랭루즈 _라 굴뤼, 1891

물랭루즈 _라 굴뤼, 1891 그동안 알코올중독, 알코올남용, 알코올 의존 등으로 불렸던 질환의 명칭은 2013년 발간된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분류 DSM-5에 의해 ‘알코올사용장애’로 정리가 되었다. 알코올사용장애의 특징으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주량이 증가하는 ‘내성’, 술을 끊거나 줄이면 떨림과 식은땀, 불안, 초조 증세가 나타나는 ‘금단’이 있다. 또한, 술을 마시고 싶은 갈망이 강하고 한번 마시면 계속해서 마시게 되어, 술로 인해 신체적, 가정적, 사회적 문제가 있어도 완전히 끊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14% 정도가 환자로 추정되고 있다.

로트렉이 경험한 거미가 보이는 현상이나, 경련 발작의 경우 알코올 금단으로 인한 증상을 시사하며, 경찰이 자신을 추적한다는 생각은 알코올 유발성 정신병적 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알코올사용장애는 저절로 낫기 힘들며, 내버려두면 점차 악화하여 조기 사망에 이를 수 있으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음주에 대한 강력한 욕구나 충동, 즉 갈망으로 인한 재발이 많으므로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한, 재발을 막기 위해 평생 단주하며 유지치료를 받아야 한다. 술기운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생기는 금단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해독치료에는 약 1~2주의 시간이 필요하며,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함께 있는 경우에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음주 갈망을 줄여 재발을 막는 항갈망제도 도움이 된다. 동기강화치료, 인지행동치료, 집단정신치료 등 정신 사회적인 치료를 함께 받는 것이 좋으며, 퇴원 이후에도 외래치료나 단주 모임(AA)에 참여하여 치료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예방을 위해서는 자신의 음주가 지나치지 않도록 평소 음주를 절제해야 하며, 가족 중에 술로 인한 건강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될 수 있으면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고, 술자리에서의 음주 권유에 대해 다른 핑계가 아닌 “아니오”라며 명확하고 단호하게 거절을 해야 한다. 그 무엇도 나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술과 의술의 만남 | 명작을 남긴 화가의 질환이 작품과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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