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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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의술의 만남 - 클로드 모네 & 백내장

고뇌의 빛으로 물든 세상을 그리다.

송인석 교수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인상 : 해돋이>, <생라자르 역>, <수련> 등의 작품을 그린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로 유명하지만, 그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화가의 생명인 눈에 백내장이 생겨 심한 심적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존경하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낸 그의 세계관과 질환에 대해 살펴본다.

글. 송인석 한양대학교병원 안과 교수

 

 

새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세상03_소식지_2015_03+04

02_소식지_2015_03+04클로드 모네가 앓았던 백내장은 눈에서 카메라의 투명한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그 고유의 투명함을 잃고 혼탁해져 사물이 흐리게 보이는 질환이다. 사람들은 모네의 후기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백내장이 그의 화풍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수련 연작 시리즈는 모네의 화풍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데, 초기에는 이 그림들은 섬세하게 표현되다 점차 대담하고 거친 붓 터치로 묘사되기 시작하여, 사물의 윤곽 역시 뚜렷하지 않고 면과 선의 구분이 매우 흐릿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의 구분뿐 아니라, 작품의 전체적 톤과 색채 역시 점차적으로 변해가는데, 초기에는 푸른색을 포함한 다채로운 색이 사용되었다면 후기에는 색상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노란색과 붉은색 계통이 주가 된다.

01_소식지_2015_03+04그가 앓았던 백내장이란 병을 감안한다면, 백내장이 심하게 진행되어 수정체가 노랗게 변하게 되면 가시광선 영역 중에서 노란색의 보색인 푸른색은 차단되고, 상대적으로 파장이 긴 노란색과 붉은색은 통과시키게 되어 생기는 현상이 그림에 반영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현대의 우리들이 몽환적이라고 느꼈던 그의 색채와 표현 방식은, 사실은 그의 눈에 비친 세상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모네는 화가에게는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었던 눈의 질환, 백내장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화풍으로 표현된 걸작들을 후세에 남겼으나, 그 자신의 고뇌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글씨조차 또렷하게 읽고 쓸 수도 없어졌고,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고 또 캔버스를 펜나이프로 찢어버리며 그림을 포기해야 하는지의 기로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모네에게 권하고 싶은 ‘다초점 인공수정체’

scr_20150302_145445통상적으로 백내장을 일으키는 데는 당뇨, 아토피와 같은 전신질환이나 복용하는 약물 그리고 자외선 등의 인자가 관여할 수 있으나 노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눈으로 들어오는 자외선을 적절히 차단하고, 금연 및 체질량 지수 조절, 항산화제 투여 등이 백내장의 예방 및 증상악화를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네는 실외, 자연광 아래에서 빛과 풍경을 묘사해내는 작가였으며 담배를 피우는 자화상을 그릴 정도로 애연가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모네의 백내장 증상은 점점 심화되었으며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한동안 거부한다.

그러나 그가 두려워했던 백내장 수술의 역사는 이미 오래된 것으로, 고대 인도에서는 이미 ‘발와술(撥窩術)’이라 하여 혼탁하고 딱딱해 진 수정체를 눈 속으로 그대로 밀어 넣는 수술법으로 치료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모네가 백내장을 앓던 시절에는 눈에 절개를 크게 내어 칼로 백내장을 제거한 후 수정체가 없는 상태에서 두꺼운 볼록 렌즈 안경을 착용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백내장 수술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인공수정체의 발명과 초음파유화술이 그것이다.

수정체는 카메라의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조직이어서 이를 제거하게 되면 과거에는 그 도수에 상응하는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대신 착용하여야 했으나 무겁고 상의 왜곡이 심하며 시야도 좁게 보이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전투기 조종사의 비행기 위 덮개가 깨지면서 그 조각이 눈 속으로 파고들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눈에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 것에 착안해 1949년, 세계 최초로 리들리 박사에 의해 런던의 성 토마스 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인공수정체 삽입술이 이뤄지게 되면서 백내장 수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는 인공수정체 삽입과 초음파유화술로 각막에 2~3mm 정도의 작은 절개창만을 내어 혼탁해진 백내장을 초음파로 쪼개어 흡수시키고 본래의 수정체를 대신할 수 있는 인공수정체를 삽입함으로써 이전의 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공수정체에도 여러 가지 기술이 접목되어 단순히 눈의 굴절 이상인 도수만을 교정하는 기능에서부터 난시를 해결하기 위한 난시 교정용 인공수정체, 그리고 노안을 극복하기 위한 다초점인공수정체 등이 발명되어 백내장과 난시, 그리고 노안치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모네는 1923년인 당시 83세 때까지 백내장 수술을 거부하다가 비로소 수술을 받았다. 모네가 현대적인 안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고민의 여지없이 좀 더 이른 나이에 백내장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 시대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어떻게 달랐을까, 그리고 더 많은 작품들을 후대에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예술과 의술의 만남 | 명작을 남긴 화가의 질환이 작품과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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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 #수정체 , #클로드 모네 , #송인석 , #명작 , #백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