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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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와 뇌출혈

굴곡진 삶과 상처를 자신만의 화풍으로 승화시킨 천경자 화백의 이야기

 

글. 최규선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고(孤) 1974년, 천경자 作갑작스러운 증상과 심각한 후유증으로 ‘뇌 속의 시한폭탄’이라고도 불리는 뇌출혈. 5~60대에서 가장 많이 발병해왔지만 고혈압, 과음, 흡연, 동맥경화,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발병 시기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굴곡진 삶에서 오는 내면의 어지러움을 화폭에 풀어냈던 천경자 화백 또한 뇌출혈의 희생자였다. 스트레스가 뇌출혈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평소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생활습관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천경자는 꽃과 여인을 주제로 1960~8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화가이다. 강렬한 원색과 독특한 구성으로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이 어려워졌다. 그녀가 오랜 시간 병석을 지키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다. 1991년, 그녀의 대표작 ‘미인도’의 위작 논란이 불거졌는데, 이로 인한 천 화백의 스트레스는 그림 활동을 중단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줄곧 병석에 있던 천 화백은 2014년 11월경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2015년 8월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혈성 뇌졸중’이라고도 불리는 뇌출혈(Cerebral hemorrhage)은 뇌혈관벽의 약한 부분이 터져 생긴 출혈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뇌혈관장애를 말한다. 약 75%가 고혈압이 원인이 되어 뇌혈관의 약한 부분이 터져서 발생하는 뇌출혈이다. 뇌 조직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혈관이 장기간 고혈압에 노출되면 혈관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럴 때 과도한 흥분이나 정신적 긴장, 과로 등의 요인에 의해 혈압이 상승하면 혈관이 견디지 못하고 터질 수 있다. 특히 당뇨가 있거나 고지혈증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더 흔히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뇌출혈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혈관 자체의 질병이다. 대표적인 것이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발생하는 지주막하 출혈, 뇌동정맥 기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뇌출혈이 있다. 소아의 경우 모야모야병 등에 의해서도 뇌출혈이 생길 수 있다. 백혈병이나 재생 불량성 빈혈 등의 혈액질환과 종양, 외상 등이 원인이 되어 뇌출혈이 발생하기도 한다.

증상은 대개 갑자기 쓰러지면서 “어지럽다”,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구토가 나타난다. 몸의 한쪽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고 의식이 점차 나빠지기도 한다. 혼수상태에 빠지면 꼬집거나 때려도 반응이 없고 숨을 몰아쉬거나 거칠게 호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발병 직후 깊은 혼수상태에 도달하면 대개 24시간에서 수일 안에 사망하는 수가 많고, 의식 상태가 비교적 좋아 묻는 말에 반응이 있으면 생존할 확률이 높다. 출혈이 적은 양이면 실신하는 일은 없으나, 손발에 힘이 없고 말이 어눌해지며 입이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뇌출혈 초기 치료 시에는 절대안정이 필요하며, 뇌부종을 가라앉히기 위해 고농도 포도당, 덱사멕타손, 만니톨 등을 투약할 수 있고, 뇌의 혈액순환을 회복시키는 주사와 지혈제, 진정제 등을 사용할 수 있다. 고혈압성 뇌출혈은 혈종의 크기가 작으며 환자의 증상이 경미한 때는 약물치료를 시행하고 혈종의 크기가 중등도 이상이며 마비가 있으면 머리뼈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서 관을 넣어 혈종을 뽑아내는 수술을 할 수 있다. 혈종의 크기가 매우 크며 뇌가 심하게 부어오를 때는 응급으로 빨리 머리뼈를 절개해 혈종을 제거해 주어야만 하며 응급조치가 늦어지면 뇌압이 상승해 의식을 잃고 사망하게 된다. 이렇게 심할 때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도 예후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급성기 치료가 끝나고 후유 증상에 대한 집중 재활 치료를 시행하게 되는데, 대개 6개월에서 1년이 경과하면 편마비나 언어장애 등의 장해상태가 고착화되므로 조기에 재활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뜻한 실내에 있다가 차가운 바깥 공기를 쐬면 혈관이 수축돼 뇌출혈이 일어나기 쉽다. 찬물 속에서 과격한 운동을 해도 뇌혈관의 혈압이 높아지면서 뇌출혈이 생길 수 있다. 기온 변화가 심한 요즘 같은 날씨에는 혈압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뇌출혈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만 그 원인을 살펴보면 느닷없이 생기는 병이 아니다. 뇌출혈의 주요 원인으로는 서구식 식습관, 운동 부족, 비만, 당뇨, 고혈압, 흡연, 음주 등이 꼽힌다. 당뇨나 심장질환이 있고 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등 뇌졸중 위험률이 높은 사람은 수시로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한편 천 화백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 여동생의 급사, 고부 갈등, 결혼 실패 등의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 그의 그림과 전기를 살펴보면 삶의 스트레스로 인해 내재적 요인의 급격한 악화로 뇌출혈이 발생하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출혈성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혈압으로 대표되는 만성 질환에 대한 관리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며 생활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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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 최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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