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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정면으로 응시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측두엽 뇌전증’

글. 박진석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영혼의 심연을 파헤친 잔인한 천재’라는 평가를 받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낭만주의 시대를 지나 제정러시아의 막판,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분위기에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지하 생활자의 수기>, <악령>, <죄와 벌>, <백치>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인류의 걸작을 남겼다. 암울한 현실의 인간을 기록하며 평생을 보낸 그는 뇌전증, 폐 질환으로 투병하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측두엽 뇌전증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생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집필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매우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19세기 낭만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그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당시의 다른 작가들이 낭만과 러시아의 풍경, 자연 그리고 서사를 이야기 할 때, 그는 일반적인 삶에서 동떨어진 삶을 이야기 했다. 그는 젊은 시절 반정부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게 되었고, 처형 직전 극적으로 황제의 사면을 받고 얼어붙은 동토 시베리아에서 수년 동안 유형 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이후 가족사의 비극,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매일매일 죽음과 같은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이런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는 외부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지병인 폐 질환과 뇌전증으로 어두운 날이 많았다. 그는 뇌전증 발작의 경험을 ‘이승과의 단절’, ‘저승의 시작’이라 표현하였고, 작품 집필 도중 뇌전증 발작으로 인한 공포감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와 뇌전증 발작으로 인한 공포와 같은 위기의식이 그로 하여금 더욱 작품 활동에 매달리게 한 것이 아닌가 짐작게 한다.

뇌전증의 역사와 치료

뇌전증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고 로마 시대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된 질병이다. 당시에는 신성, 혹은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여겼으며 이후 중세 시대에는 뇌의 체액이 빠져가나 발생한다고 여겼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뇌전증은 뇌에서 발병하는 질환이라는 이론이 자리를 잡았으며 전기 이상과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졌고, 20세기에 와서야 약물적, 수술적 치료가 본격화되었다.

측두엽 뇌전증(Temporal Lobe Epilepsy)은 측두엽에서 기원하는 발작과 관련한 여러가지 상황을 일컫는다. 측두엽 뇌전증은 뇌전증의 일부로 약물난치성 뇌전증 중 흔한 형태로 알려져 있다. 주로 해마(Hippocampus)에서 기원하여 해마경화증(Hippocampal Sclerosis)을 동반하게 되고, 특징적인 증상으로 조짐, 자동증, 정신이상 등의 증상을 보인다. 뇌전증의 증상 중 가장 흔한 주관적 증상은 조짐으로 뱃속에서 치밀어 오는 느낌, 공포감이 엄습하는 느낌 등이 있다. 그 외에 기시감(Deja vu), 이인증(Depersonalization) 등의 증상이 있다. 객관적 증상으로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멍하게 응시하는 동작(Motionless Staring), 자동증이 나타난다. 자동증은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입맛을 다시거나, 침을 꿀꺽꿀꺽 삼키거나, 혹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하며 행동을 멈추거나 동공이 확대되는 증상도 있을 수 있다.

진단은 뇌파, 뇌자기공명영상(Brain MRI) 그리고 양전자방출촬영(PET) 등이 사용되며 주로 항뇌전증약제로 치료하게 된다. 약제에 대한 반응성은 초기 수 년 동안은 약에 반응하다가 이후 점차 약물에 저항하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약물에 대한 반응성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고, 시간에 따라 좋은 반응을 보이다가 나쁜 경과를 보이는 등 다양하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관해(Remission)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약물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므로 여러 가지 약제를 시도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물 난치성 뇌전증의 경우 해마, 편도, 해마곁이랑 등을 절제하는 수술적 방법으로 60~80%의 환자에게서 질병의 완화를 기대해 볼 수 있으며, 브레인 MRI가 정상인 경우에도 환자의 병변이 측두엽기원임이 확인되었을 때 수술적 치료로 관해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19세기까지는 뇌전증의 치료가 정립되기 전이었다. 양차대전과 이념의 대립으로 폭풍과 같았던 19~20세기를 지나 인간의 이성과 인공지능을 통한 치료가 가능한 현재, 뇌전증은 더이상 신령이나 악마에 의한 질병이 아니다. 이제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로이 하고 치료와 조절이 가능한 질병임을 인지해 뇌전증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할 때이다.

참조 | 임상뇌전증학, 대한뇌전증학회, 도스토예프스키, 책세상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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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 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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