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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아닌 심리적 부상,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과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매일 밥 먹듯 하던 일을 하루아침에 못 하게 된다면 흔히 슬럼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유능한 선수가 아무 이유도 없이 야구공을 정확히 던지는 능력을 영구적으로 잃어버릴 때, 우리는 이것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하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정리. 편집실

steve blass syndrome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과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올해 초에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갖가지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교도소에서 한 방을 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좌완투수로서 국민적 인기를 누리던 야구선수 김제혁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수감자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이 얽히고 설킨다. 주인공 김제혁은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사람이지만 야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실력파다. 하지만 같은 방을 쓰는 제소자에게 습격을 당해 왼손이 마비되어 야구공을 쥘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꿔 교정에서 틈틈이 공을 던져보지만 어쩐지 김제혁은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다.

극 중 인물인 김제혁처럼 야구 선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등 제구력 난조를 겪는 증후군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뛴 투수 스티브 블래스(Steve Blass)의 이름에서 따왔다. 팀의 승전투수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1972년 19승 8패의 성적으로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이듬해 별다른 이유나 경고 증상 없이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게 된다. 던지는 공이 스트라이크존에서 5cm, 50cm를 벗어나며 결국 은퇴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블래스는 수차례 정밀 검사와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현재는 샌디에이고 코치로 활약 중인 전 두산 베어스 홍성흔 선수도 블래스 증후군으로 인해 포수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전향했다. 또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투수 존 레스터는 1루로 견제구를 던지지 못했고, 뉴욕 양키스의 척 노블락 선수는 결국 메인 투수에서 외야수인 좌익수로 전향하는 아픔을 겪었다.

많은 야구 선수들이 신체적 부상보다 더 두려워하는 블래스 증후군은 심리적인 부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남긴다. 더 잘하고 싶은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증후군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블래스 증후군은 야구뿐만 아니라 평소 잘하던 일을 갑자기 못하게 되는 정신적 질환으로 골프, 농구, 피아니스트처럼 특정 근육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담의 짐 덜어내는 정신운동부터 시작해야

원인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과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은 신체적인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공을 던져야 할 내야수가 1루수의 글러브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어디로 공을 던져야 할지 초점의 위치를 잃어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명확하게 규명된 원인은 없지만 선수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사실이 그나마 일반적이다. 경기에서 늘 하던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잘하고자 하는 압박’이 끼어들면 스스로를 긴장하게 만들면서 공의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정보에 불과하며, 고통받는 선수들의 증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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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래스 증후군과 비슷한 현상으로는 골프의 입스(Yips)를 들 수 있다. 입스는 운동장애의 일종으로 골프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꼽히는 퍼팅도 할 수 없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 상태를 말한다. 이로 인해 은퇴를 결정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2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골퍼들이 주로 걸리기 쉽다. 입스를 벗어나기 위해서 퍼터나 그립을 바꾸는 방법을 선택하거나 양손의 위치를 뒤바꿔 경기에 임하는 선수도 있지만 이러한 전략은 단지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이 외에도 농구에서의 자유투, 테니스나 배구에서의 서브를 넣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치료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을 이기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면, 그리고 정신적인 장애물을 다루는 세 가지 마음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호전의 희망은 기대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마음이 떠돌아다니지 않도록 차분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긴장을 이완시키고 자신에게 닥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세 번째는 경기가 벌어지는대로 내버려두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또한 원래의 자세로 스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점진적으로 증명하는 기회가 많을수록 좋다. 마치 야구를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아주 기초적인 단계부터 연습이 이뤄져야 한다. 관중이 없는 곳에서 연습을 하거나 모의 경기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선수들이 실력을 검증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환경에서 연습하도록 해야 한다. 선수들의 불안과 걱정이 소멸될 때까지 정신운동,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노성원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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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심리 치료 , #정신운동 , #블래스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