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목록으로 이동

비운의 천재, 카미유 클로델과 조현병

프랑스 파리에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 등 3대 유명 미술관도 있지만, 관광객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 ‘로댕 미술관’도 있다. 미술관 정원에는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의 문>과 같은 작고 큰 조각 작품이 박제된 시간을 표현하며 사람들을 반긴다. 그런데 로댕의 작품을 감상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이다.

카미유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_중년, 1893

굴곡진 삶을 조각한 카미유 클로델

로댕의 아틀리에서 작업하고 있는 카미유 클로델, 1887‘카미유 클로델’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두 편의 영화(1988, 2013)로도 만들어지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이자벨 아자니, 줄리엣 비노쉬)들의 면모만 보아도 카미유 클로델이 프랑스 예술계에서 상당한 비중으로 기억되는 인물임을 알수 있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으며 굵직한 작품들을 남긴 조각가다. 19세의 나이에 로댕 작업실의 조수로 들어간 그녀는 24살 연상 로댕과 사랑에 빠졌다. 로댕은 예술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가졌던 카미유 클로델이 조각계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도움을 주는 등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연상될 정도로 작품적으로, 감정적으로 많은 영감을 주고받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가 아름다운 로맨스로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로댕에게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동거해 온 ‘로즈 뵈레’라는 여인이 있었고 결국 십여 년 후 그녀에게 돌아가면서 카미유 클로델은 완전히 혼자가 된다. 로댕과 헤어지고 나서 카미유 클로델은 여성 차별이라는 시대의 커다란 벽 앞에서 절망하다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조현병 증세를 보이며 더욱 세상을 등지고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된다.

늦게나마 딸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와 남동생은 카미유 클로델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다. 그녀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30년을 살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많은 예술가의 삶이 그러하듯 그녀의 가슴 아픈 인생사도 그녀가 남긴 뛰어난 조각 작품과 함께 기억되고 있다. 태어나면서 1년 전에 사망한 오빠의 뒤를 이어줄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버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더욱 부모의 사랑과 인정에 목마른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카미유 클로델. 부모가 없다는 상실감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일은 바로 살아있는 부모가 자신을 자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카미유 클로델은 외로움의 뿌리를 품은 채 성장했다.

부모의 사랑과 조현병의 상관관계

로댕 흉상, 1892조현병으로 대표되는 정신질환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상호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어떤 원인 하나 때문에 일어났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런 복잡함을 설명하기 위해 잘 사용하는 것이 ‘스트레스-취약성 모델’이다. 생물학적 취약성을 가진 사람이 심리적 또는 신체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이것이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지만, 큰 사고를 당한 경험 혹은 강력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등 아주 강력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거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겪게 되는 스트레스의 경우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겪는 어려움은 어른이 되어서 겪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큰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발달하면서, 출생 직후의 경험이 성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동물실험 연구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를 발견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생후 7일 동안 어미 쥐의 모성애를 받고 자란 새끼 쥐와, 새끼를 잘 돌볼 줄 모르는(다른 말로 돌봄을 받아보지 못한) 어미 쥐에게서 자란 새끼 쥐와 비교했을 때, 사랑을 받고 자란 쥐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침착한 성격으로 자란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생후 7일간의 돌봄이 새끼 쥐에게 있어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뇌로 발달하도록 돕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미유 클로델이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조현병을 앓게 된 주원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에 굶주리며 살아온 경험이 그녀의 인생 전체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마 그녀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면 인생의 파도들을 이겨내기에 충분하고 안정적인 뇌로 발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그녀의 삶 은 조금은 더 평범해지고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비운의 천재가 좋은지, 아니면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 더 좋은지 묻고 싶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주변을 조금씩 더 돌아보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글. 김석현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18.01.05

관련의료진
정신건강의학과 - 김석현
태그

#조현병 , #정신질환 , #스트레스